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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병호 "제왕적 대통령제+대통령의 지시·감독 → 순응할 수 밖에"[국정원 특수활동비 상납 의혹: 남재준 등 재판 ⑧-3] "박근혜·대통령비서실, 국정운영에 잘 쓸 것이라고 믿고 특수활동비 전달"
박형준 | 승인 2018.04.14 00:40

서울중앙지법 형사합의32부(부장판사 성창호)는 13일 남재준·이병기·이병호 전 국가정보원장·이원종 전 대통령비서실장·이헌수 전 국가정보원 기획조정실장의 '국가정보원 특수활동비 청와대 상납 사건'의 공판기일을 진행했다. (이하 등장인물 호칭 생략)

이날 진행되는 것은 피고인신문이었다. 오전에는 남재준에 대한 피고인신문이 진행됐고, 오후에는 이병기·이병호에 대한 증인신문이 진행됐다. 

이병호 전 국가정보원장 ⓒKBS

이병호는 이날 ▲국가정보원은 대통령과의 지시·감독으로 묶이는 규정이 매우 강력하게 작용하기 때문에 ▲대통령이 국가정보원의 예산에 일정한 지휘권을 행사하면 순응할 수 밖에 없으며 ▲"박근혜가 국정운영에 잘 쓸 것"이라고 특수활동비를 전달했다고 주장했다.

이어 ▲박근혜의 지시를 받고 이원종에게도 3개월 동안 매달 5천만 원씩 전달했고 ▲대통령비서실의 운영자금이 부족한 것으로 알았으며 ▲그 돈도 국정운영 자금으로 사용할 것이라고 믿었다고 덧붙였다.

다음은 이병호의 관련 진술이다.

▲ 국가정보원장으로는 2015년 3월부터 2016년 9월까지 재직했다. 2016년 3월부터 5월까지 이헌수를 통해 매달 1억 원을, 9월에는 2억 원을 청와대에 전달했다.

▲ 국가정보원장 부임 직후, 이헌수로부터 "전임 원장 때부터 정기적으로 지원됐다"고 보고 받았다. 그래서 "별 문제가 없다"고 생각했다. 다만 '관행'이라는 표현은 쓰고 싶지 않다.

▲ 대통령과 국가정보원의 관계는 다른 나라와는 달리 '지시·감독'으로 묶이는 국가정보원법 규정이 매우 강력하게 작용한다. 특히 우리나라 대통령제는 제왕적 대통령 중심제 아닌가? 

▲ 그래서 검찰에서도 "대통령은 국가정보원 예산에 일정한 접근성이 있다"고 답변했다. 대통령이 국가정보원의 예산에 일정한 지휘권을 행사하면 순응할 수 밖에 없다. 그 돈은 대통령의 요청에 의해 준 것이었다.

▲ "청와대에 돈을 올리면, 박근혜가 그 돈을 국정운영에 잘 쓸 것"이란 생각을 해서 특수활동비를 지원한 것이었다. 

▲ 게다가 "(청와대에 특수활동비를 보내는 일은) 전임 원장 시절부터 행정적으로 정착됐다"는 이야기까지 들었다.

▲ "박근혜가 특수활동비를 목적에 잘 쓸 것"이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사용처를 확인할 생각은 하지 않았다. 

▲ 박근혜에게 물어볼 수도 없었다. 대통령은 국가안보 총책임자고, 국가정보원장은 대통령의 국가안보 정책을 지원·보좌하는 역할을 맡기 때문이다. 

박근혜 전 대통령 ⓒKBS

▲ 국가정보원의 자금을 대통령에 지원하는 것은, "대통령이 국가안보에 돈을 잘 사용할 것"이라는 믿음 속에 지원되는 공적자금이었다. 대통령에 대한 국가정보원장의 신뢰는 기본이다. 대통령을 의심하면 믿음이 안 생긴다.

▲ 다만 "국가정보원에서 조금 더 편하게 일하려고 했다"거나 "대통령의 호의를 기대했다"는 등 검찰의 주장은 전혀 사실이 아니다. 대통령이 국가정보원장에게 기대하는 것은 본연의 업무를 잘 하는 것이다.

▲ 2016년 5월 박근혜는 "국가정보원에서 지원하던 돈을 계속 달라"고 요청했다. 박근혜가 왜 그런 전화를 했는지는 알 수 없다. 이미 매달 1억 원을 주고 있었기 때문이다. 

▲ 2016년 8월에는 청와대의 요구 때문에 특수활동비 지원을 중단했다. '국정농단 사태'와의 관련성은 생각해 본 적이 없었다.

▲ 그러다가 9월이 돼서 이헌수로부터 "대통령께서 '돈이 필요하다'고 하셨다"는 말을 듣고 2억 원을 보냈다. 

▲ '추석' 이야기는 듣지 못했고, 지원을 중단했던 부분과 이후 중단될 부분을 감안했다. 제 자발적인 증액이었다. 

(※ 기자 주: 이헌수는 "이병호에게 '추석' 관련 언급도 했다"고 주장한다.)

▲ 2016년 8월에는 정무수석실에서 요청한 5억 원을 줬다. "그 돈도 국정운영에 사용할 것"이라고 생각했지, 새누리당 공천 관련 여론조사 비용에 사용할 것이라고는 알지 못했다. 검찰의 압수수색 때 비로소 알았다. 

▲ 게다가 저는 5억 원이라는 액수를 지정한 적이 없다. 오히려 이헌수가 언급한 액수였고, 저는 이헌수의 보고를 들은 뒤 승인했을 뿐이다. 

▲ 이헌수는 청와대와의 소통 채널이었기 때문에 이헌수의 말을 믿었다. "5억 원 전달 요청도 박근혜의 의중"이라고 생각했다.

▲ 저도 이헌수를 믿었다. 훌륭한 정보전문가였고, 그의 기획조정실 업무에 대해서도 만족했기 때문이다. 깊이 믿었다. 

▲ 국가정보원장은 워낙 바쁘고, 국가정보원은 부서장 중심으로 운영하기 때문에 저는 핵심만 보고 받았다. 

이헌수 전 국가정보원 기획조정실장 ⓒSBS

▲ 2016년 6월부터 박근혜의 명백한 지시를 받고 3개월 동안 5천만 원씩 총 1억 5천만 원을 보낸 적이 있다. 하지만 이원종은 부담스러워 하는 기색이었다. 

▲ 대통령비서실의 운영비가 적은 줄 알고 전달했다. 그 자금 역시 국정운영 관련 자금으로 사용될 줄 알았다. 이후 이원종이 "줄 필요 없다"고 연락한 뒤 전달을 중단했다.

▲ 뇌물공여는 꿈에도 생각해보지 못한 혐의다. 국가정보원장이 대통령에게 뇌물을 줘야 할 이유도, 동기도, 의사도 없고, 대통령비서실장·정무수석에게 줘야 할 이유는 더 없었다.

▲ 국가정보원과 정무수석실은 업무 협조 관계가 아니다. 또한 저는 조윤선·현기환·김재원 등 정무수석들과 만나거나 연락한 적도 전혀 없다. 오히려 정무수석이 국가정보원장을 어려워한다. 

원래 이날 공판에서는 피고인 5명 모두에 대한 신문이 진행돼야 했다. 하지만 검찰이 당초 예고한 피고인신문 시간 약속을 깬 뒤, 예상 시간의 3배 이상의 시간을 할애하며 추궁하면서 3명에 대해서만 진행된 것이었다.

다시 강조하는데, 검사가 공판을 '심플하게' 진행하지 못하고, 피고인·증인과 지나치게 격론을 벌이거나 확인을 받으려고 들 때는 '증거 부족'을 의심해야 한다. 

이미 "국가정보원장으로서 정무수석실의 협조를 얻기 위해 뇌물을 건넸다"는 주장은, 이병기가 "조윤선·신동철의 도움보다 내 전화 한 통이 더 빠르다"는 진술 때문에 일부 희석된 감이 있다. 

지나친 시간 끌기 전술은 '최순실 특검'의 주특기였다. '뇌물 거래'를 입증하기 위해 장시간 시간 끌기에 나선다? 왜 이렇게 똑같은지 알다가도 모를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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