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法, 22일부터 '세월호 참사 보고서·훈령 조작' 공판 시작 ①[김기춘·김장수·김관진의 세월호 참사 보고서·훈령 조작 재판 ①-1] 다시 살펴보는 검찰의 '세월호 7시간' 수사결과, 피고인들 모두 무죄 주장
박형준 | 승인 2018.06.21 14:30

法, 22일부터 '세월호 참사 보고서·훈령 조작' 공판 시작

서울중앙지법 형사합의30부(부장판사 황병헌)는 22일부터 김기춘 전 대통령비서실장·김장수 전 국가안보실장·김관진 전 국가안보실장·윤전추 전 청와대 부속비서관실 행정관의 '세월호 참사 당일 대통령 보고 시간 조작 및 국가위기관리기본지침 불법 변개 사건'의 공판을 시작한다. (이하 등장인물 호칭 생략)

검찰은 3월 28일 수사결과를 발표하면서 피고인 4명을 불구속 기소했다. 김기춘·김장수에게는 허위공문서작성 및 행사 혐의가 적용됐고, 김관진에게는 공용서류손상·직권남용 혐의가 적용됐다. 또한, 윤전추에게는 위증 혐의가 적용됐다.

또한, 김기춘·김장수·김관진의 범행에 가담한 김규현 전 국가안보실 1차장은 지명수배·기소중지·인터폴 적색수배·여권 무효화 조치가 진행됐고, 신인호 전 국가위기관리센터장은 군 검찰로 이송됐다.

김규현은 2017년 9월 20일 스탠포드대 방문조교수 신분으로 미국에 출국했기 때문이고, 신인호는 현역 육군 소장 신분이었기 때문이다.

김기춘 전 대통령비서실장 ⓒKBS

검찰의 기소 내용에 따르면, 피고인들의 혐의는 다음과 같다.

김장수: 김장수는 2014년 4월 16일 오전 10시 15분 박근혜 전 대통령으로부터 전화를 받은 적이 없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김규현·신인호에게 "대통령은 그날 오전 10시 15분 나에게 전화해서 '단 한명의 인명피해도 발생하지 않도록 철저히 수색하여 누락되는 인원이 없도록 하라'고 지시했고, 10시 22분 다시 전화해서 '샅샅이 수색하여 철저히 구조하라'고 지시했다"면서, "상황일지 등 세월호 사고 당시 청와대의 조치내역을 정리하는 문서에 위와 같이 기재하라"고 지시했다. 

이에 따라, 김규현·신인호는 국가안보실 내 국회 대응 업무 담당자에게 김장수의 지시를 그대로 전달했고, 담당자는 국회 국정조사 특위 업무보고서 등 공문서 9건에 같은 내용을 담아 국회 등에 제출했다.

김기춘: 2014년 4월 16일, 청와대 정무수석실에서 작성한 상황 보고서는 정호성 당시 청와대 제1부속비서관에게만 전달됐을 뿐, 박근혜에게는 실시간으로 보고되지 않았다.

하지만 김기춘은 국회에 제출할 답변서 등에 "시시각각으로 변하는 현장 상황을 대통령께서 신속히 아실 수 있도록 20~30분 간격으로 간단없이 실시간으로 보고 드렸기 때문에 대통령은 직접 대면보고를 받는 것 이상으로 상황을 파악하고 있었습니다"라고 적도록 지시했다. 이어 "나도 국회에서 그렇게 발언할 것"이라고 공언했다. 

김관진: 2014년 7월 하순, 김관진은 김규현·신인호에게 대통령훈령 '국가위기관리기본지침'의 임의 수정을 지시했다. 이후 지시대로 이행한 사실을 보고받은 뒤, "전 부처 및 기관에 수정 지시를 시달하라"고 지시했다.

이에 따라, 신인호는 "국가안보실이 재난 상황의 전략 커뮤니케이션의 컨트롤 타워 역할을 한다"는 내용에 볼펜으로 두 줄을 그어 삭제한 뒤, 수기로 "국가안보실은 국가위기 상황에서만 대통령을 보좌한다"는 등 임의로 내용을 수정해 공문을 시달했다.

신인호 전 위기관리센터장이 볼펜으로 두 줄을 긋고 임의 수정한 국가위기관리기본지침

윤전추: 2017년 1월 15일 박근혜 전 대통령의 탄핵심판 증인으로 출석해 "대통령이 2014년 4월 16일 오전 9시 경 관저 집무실로 들어가는 것을 보았고, 10시에 보고서를 전달해 드렸다"고 허위 증언을 했다. 검찰에 다르면, 박근혜는 당일 오전 관저 침실에서 나오지 않았다.

5월 25일 진행된 공판준비기일에서, 피고인 측은 전부 무죄를 주장했다. 각 피고인들의 입장을 정리하면 다음과 같다.

김기춘: 대통령에 대한 국회 측 질의 답변서 작성에 관여하지 않았고, 문서가 허위라고 인지한 적도 없다. 국가안보실의 문서를 신뢰했고, 국가안보실에서 온 자료를 국가안보실장에게 다시 확인하는 경우도 상상하기 어렵다. 국가안보실에서 작성한 서류를 대통령비서실에서 '잘못된 것이냐'고 할 수 없는 노릇이다.

뿐만 아니라, 대통령 관련 문서는 정호성을 통하게 돼 있었다. 정호성에게 보고서가 전달되면, 박근혜가 문서를 직접 봤는지에 대해서는 확인하지 않는다. 그래서 보고서가 대통령에게 늦게 전달된 사실을 알지 못했다.

김장수: 통화 사실을 조작할 이유도 없고, 김장수는 2014년 5월 23일 사임했다. 그렇기 때문에 사임 후 작성된 문서에 대한 책임을 추궁하는 공소 내용은 납득하기 어렵다.

김관진: 국가위기관리기본지침 원본은 법제처에 따로 있다. 신인호가 두 줄을 긋고 수정한 문건은 각 부처에서 보관하는 단순한 사본에 불과하다. "효용이 손상됐다"고 볼 수 있는지 해석상 다툼이 있다.

윤전추: 위증을 한 적은 없다.

다시 살펴보는, 檢 발표 '2014. 4. 16. 오전'

박근혜 재임 당시 청와대는 "대통령은 세월호 참사 당일 오전 10시에 국가안보실로부터 최초 보고를 받아서, 10시 15분에 최초 지시를, 10시 22분에 추가 지시를 했다"고 주장했다.

하지만 문재인 정부 출범 후 캐비닛에서 발견된 다량의 문건에 따르면, 최초 보고 시간은 9시 30분으로 기록됐다. 검찰은 ▲사실은 10시 20분에 첫 서면 보고가 이루어졌고 ▲처음에는 9시 30분으로 조작했다가 ▲10시로 다시 정정된 것이라고 발표했다.

검찰이 밝힌 '2014년 4월 16일 오전'은 다음과 같다.

▲ 박근혜는 세월호 참사 당일 본관 집무실에 출근하지 않은 채 관저에 머무르고 있었다.

▲ 청와대 위기관리센터는 9시 19분 YTN 속보를 통해 세월호 참사를 처음 알았고, 9시 24분 청와대 문자메시지 발송시스템을 이용해 관계자들에게 문자 메시지를 발송했다. 

▲ 청와대 위기관리센터 실무자들이 각종 정부를 파악해 상황보고서 1보 초안을 작성한 시각은 9시 57분이었다. 

▲ 김장수는 오전 10시 상황보고서 1보 초안을 받은 뒤, 신인호로부터 전화 보고를 받았다.

▲ 김장수는 박근혜에게 휴대전화로 전화를 걸었지만, 박근혜는 전화를 받지 않았다. 그러자 김장수는 안봉근 당시 청와대 제2부속비서관에게 전화를 걸어 "대통령이 전화를 받지 않으신다. 지금 대통령에게 세월호 관련 상황보고서 1보가 올라갈 예정이니 대통령에게 보고될 수 있게 조치해 달라"고 말했다.

▲ 김장수는 위기관리센터에 내려가 다시 박근혜에게 전화를 했지만, 박근혜는 전화를 받지 않았다.

김장수 전 국가안보실장 ⓒ국회방송

▲ 안봉근은 김장수로부터 전화를 받은 뒤, 10시 12분 이영선 당시 청와대 제2부속비서관실 행정관에게 "승용차를 준비하라"고 지시했다. 

▲ 신인호는 10시 13분 상황보고서 1보를 완성한 뒤, 전령 업무 담당 상황병에게 "보고서를 관저에 전달하라"고 지시했다. 

▲ 상황병은 약 7분을 뛰어 관저에 갔고, 10시 20분 경 관저 근무 경호관을 통해 김막업 씨에게 보고서를 전달했다.

▲ 하지만 김막업은 박근혜에게 별다른 이야기를 하지 않은 채 박근혜의 관저 내 침실 앞 탁자 위에 보고서를 올려놨다. 

▲ 안봉근은 이영선이 준비한 승용차를 타고 관저에 가서 내실로 들어가 침실 앞에서 수 회에 걸쳐 박근혜를 불렀고, 박근혜는 그때서야 침실 밖으로 나왔다. 안봉근이 관저에 도착한 시간도 10시 20분으로 추정된다.

▲ 안봉근은 박근혜에게 "“국가안보실장이 급한 통화를 원합니다"라고 보고했고, 박근혜는 "그래요?"라고 말한 뒤 다시 침실에 들어가 10시 22분 김장수에게 전화를 걸어 지시사항을 전달했다.

▲ 10시 25~26분, 위기관리센터 상황팀장은 해양경찰청 상황실에 전화해 박근혜의 지시사항을 전파했다. 하지만 세월호는 이미 골든타임을 모두 보낸 뒤, 선체가 침몰하던 중이었다.

▲ 청와대 정무수석실은 오전 10시 36분부터 오후 10시 9분까지 총 11회에 걸쳐 정호성에게 상황 보고서를 메일로 전달했다. 

▲ 하지만 정호성은 "박근혜가 관저에 있었기 때문"에 즉시 박근혜에게 보고서를 전달하지 않은 채 오후·저녁 각 1회씩 일괄해 보고서를 전달했다.

윤전추 전 청와대 부속비서관실 행정관 ⓒKBS

"대통령이 대낮까지 관저 침실에 누워 있었던 관계로 국가위기상황에 제대로 대응하지 않았다"는 사실이 알려질 경우, 어린 아이라도 정권이 맞이할 위기를 쉽게 짐작할 수 있었다.

그렇기 때문에 보고 시간을 9시 30분으로 조작했다가, 각종 사실관계와 맞지 않아져서 10시로 다시 정정했던 것이다. 

이 정황은 이 재판에서 다시 다뤄질 가능성이 높다. 윤전추의 위증 혐의와 관련해 핵심적 사실관계이기 때문이다.

(곧이어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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