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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동철 "국가안보실, '세월호 10시 보고 근거' 숨기려 해"[김기춘·김장수·김관진의 세월호 참사 보고서·훈령 조작 재판 ③-1] "김규현 국가안보실 1차장, '국가안보실은 재난 컨트롤 타워 아니'라며 화내"
박형준 | 승인 2018.07.17 13:45

서울중앙지법 형사합의30부(부장판사 황병헌)는 17일 김기춘 전 대통령비서실장·김장수 전 국가안보실장·김관진 전 국가안보실장·윤전추 전 청와대 부속비서관실 행정관의 '세월호 7시간' 관련 대통령 보고서 조작 및 대통령훈령 국가위기관리기본지침 불법 변개 사건의 공판기일을 진행했다. (이하 등장인물 호칭 생략) 이날 공판기일에는 김기춘 측만 출석했다.

검찰에 따르면, 세월호 참사가 발생한 2014년 4월 16일 정무수석실에서 작성한 상황 보고서는 정호성 당시 청와대 부속비서관에게만 전달됐을 뿐, 박근혜 전 대통령에게는 전달되지 않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박근혜 재임 당시 청와대는 '정호성에게 이메일로 발송한 시간'을 대통령에게 보고한 시간과 똑같이 취급했다.

당시 김기춘은, 국회에 제출할 답변서 등에 다음과 같이 적도록 지시하면서 "나도 그렇게 발언할 것"이라고 말했다.

"시시각각으로 변하는 현장 상황을 대통령께서 신속히 아실 수 있도록 20~30분 간격으로 간단없이 실시간으로 보고 드렸기 때문에 대통령은 직접 대면보고를 받는 것 이상으로 상황을 파악하고 있었습니다."

이와 관련해 검찰은 김기춘에게 허위공문서 작성·행사 혐의를 적용해 불구속 기소했다.

신동철 전 청와대 정무비서관 ⓒMBC

이날 첫 증인으로 출석한 사람은 신동철 전 청와대 정무비서관이었다. 신동철은 세월호 참사 당시 청와대 국민소통비서관이었고, 2014년 6월 24일 정무비서관으로 옮긴다.

신동철은 이날 ▲김규현 국가안보실 1차장에게 "국가안보실이 왜 재난 컨트롤 타워가 아니냐"고 따졌더니 김규현이 화를 냈고 ▲박근혜·김장수의 세월호 참사 당일 통화 횟수는 3회였지만 김기춘은 국회에서 "6~7회"라고 답변해서 의아했으며 ▲'시시각각' '신속히 알 수 있도록' '충분히 보고' '2~30분 단위' 등 논란을 일으켰던 표현은 김기춘이 직접 발상한 표현이라고 증언했다.

또한 ▲국가안보실에 "10시의 의미가 '보고서 발송 시간'인지 '대통령이 실제로 읽은 시간'인지 알려 달라"고 요구했지만 ▲국가안보실은 뭔가 자꾸 숨기려고 하는 듯한 느낌을 줬고 ▲김기춘은 국가안보실의 주장을 받아들여 "국가안보실이 정호성의 이메일에 보고서를 보낸 시간"과 "박근혜가 실제로 읽은 시간을 똑같이 받아들였다"는 증언도 했다.

다음은 신동철의 관련 증언이다.

▲ 박근혜는 국정 전반에 대해 주요 장관으로 직접 보고를 받는 경우가 많지 않았다. 청와대에서도 "박근혜는 대면 보고를 받지 않으려고 한다"는 것이 공지의 사실처럼 받아들여졌다.

▲ 이병기 당시 국가정보원장은 "대통령께서 국가정보원장의 대면보고도 받지 않으신다"며, "국가정보원장의 보고는 안보 관련 사항이니 받으셔야 한다"고 말했던 적이 있다.

▲ 2014년 5월 15일, 김기춘은 "세월호 참사 관련 국회 운영위의 질의에 대비해야 하니, 정무수석은 세월호 사고 당시 첫 보고·내용 전파·초동 대응·현장방문 등 전 과정이 어떻게 이루어지는지 상세히 보고해 달라"고 지시했다.

▲ 김기춘이 정무수석에게 저렇게 구체적인 지시를 하는 것은 처음 봤다. 이후 정무비서관으로 옮겨 국회 답변자료 초안을 만들어 김기춘이 주재하는 비서관·행정관 회의에 제출했다.

▲ 김기춘이 주재한 회의나 국회 대응 과정에서 10시 17분이 '탑승자의 마지막 카카오톡이 발생한 시각' '인명 구조 골든타임'이라는 사실은, 사실관계 확인 차원에서 논의됐다. 명확히 기억한다.

▲ 김규현 당시 국가안보실 1차장은, 김기춘이 주재하는 회의에서 "청와대는 재난 컨트롤 타워가 아니"라고 발언했다. 

▲ 그래서 저는 "국가안보실이 왜 컨트롤 타워가 아니냐"는 식으로 공격적 반박을 했던 적이 있다. 그러자 김규현은 얼굴이 붉어질 정도로 화를 냈다.

▲ 그렇게 김규현과 말다툼을 했을 때, 김기춘은 "나는 '기본법상 필요한 조치는 안전행정부 장관이 본부장을 맡는 중앙재난안전대책본부(중대본)에서 초기상황을 파악해 보고한다'고 답변할 것"이라고 말했다. 

▲ 그러면서 "국가위기관리기본지침도 재난 및 안전관리 기본법 취지에 맞춰 고치라"고 말했다.

김규현 전 국가안보실 1차장 ⓒKBS

▲ 정무비서관에 취임한 뒤에는 각종 국회 대응 자료를 취합해 김기춘과 독대하면서 통화내역에 대한 논의를 했다.

▲ 당시 대통령비서실은 세월호 참사 관련 보고사항에 대한 정리가 안 돼 있었다. 국가안보실에서 보고를 맡았기 때문이다. 

▲ 자료를 취합한 기억을 떠올려 보면, 박근혜에게는 세월호 참사 당일 3회의 전화를 했던 것으로 돼 있었고, 첫 보고 시간은 10시로 돼 있었다.

▲ 하지만 김기춘은 국회에서 "김장수 실장은 대통령과 6~7회 통화했다"고 말했다. 저는 분명히 3회로 기억하고 있었기 때문에 "실장님이 왜 저러지" 싶은 생각이 들었다. 

▲ 하지만 7회가 각종 사실관계와 맞지 않아서 그랬는지, 당시 세월호 국조특위 새누리당 간사였던 조원진 대한애국당 의원은 "대통령과 김장수 간 7회의 통화가 언제 진행됐느냐"고 질의했다. 

▲ 조윤선 당시 청와대 정무수석은 저에게 자료를 주면서 "타임 테이블을 다시 만들라"고 지시했다. 조윤선이 준 자료는, 부속실에서 "이것이 실제 통화한 횟수"라면서 전달한 자료로 이해했다.

▲ 제가 만든 타임 테이블 자료는, 조원진이 언론에 공개했다. '세월호 7시간'에 대한 비판을 무마하기 위한 차원의 공개였다. 

▲ 2014년 10월에는 김재원 당시 새누리당 의원에게 더 구체적인 자료를 제공했다. 박근혜의 조치 등을 더욱 적극적으로 담아 국회에 제출했던 것이었다.

(※ 기자 주: 조원진에게 제출한 자료에는 "10시에 박근혜에게 첫 보고를 했고, 10시 15분에 첫 유선 보고 후 지시를 받았다"고 적혀 있었다.

김재원에게 제출한 자료에는 "박근혜가 10시 22분 안보실장에게 전화해서 두 번째 유선 보고가 진행됐다"고 적혀 있었다. 앞서 거론됐듯이, 골든타임은 10시 17분이었다.)

▲ 2014년 7월 1일 진행된 회의에서, 저는 김기춘에게 국회의 실제 질의처럼 예상 질문을 했고, 김기춘은 답변을 하는 연습을 했다. 김기춘은 당시 모든 질문을 일일이 검토해 최종 결정했다.

▲ 또한 김기춘에게는 답변 자료를 집으로 보냈고, 김기춘은 사인펜으로 수정사항을 표기해서 다음날 저에게 "이렇게 바꾸라"고 지시했다. 

▲ 김기춘은 일부 자료에 대해서는 "대통령기록물법에 따라 제출하기 어렵다"는 답변을 제시하면서, 정리를 지시했다. 

김기춘 전 대통령비서실장 ⓒKBS

▲ 김기춘은 당시 국회에서 "국가안보실에서 해경 상황실에 여러 번 전화해 상황을 확인한 것은 구조를 강행하려는 취지가 아니냐"는 예상 질의에 대해, "현장과 직접 통화한 것이 아니라 상황실과 통화한 것이기 때문에 강행한 것이 아니"라는 취지로 답변했다.

▲ 당시 김기춘의 답변을 들은 뒤 "김기춘이 국가안보실·해경 상황실의 핫라인 녹취록을 봐서 저렇게 구체적으로 답변한다"고 생각했다.

▲ 국회에 최종적으로 제출한 답변 자료에는 "당시 대통령에게 대면 보고를 하지 않은 이유로, "시시각각으로 변하는 현장 상황을 알 수 있도록 유선 7회·서면 14회 등 보고를 드렸다"는 내용을 적었다.

▲ 또한 '대통령이 위기관리센터를 방문하지 않은 이유'에 대해서는 "대통령비서실은 현장의 보고를 바탕으로 실시간으로 상황을 파악해 충분히 보고를 드렸다"는 내용을 적었다. 

▲ "사안이 심각한데, 서면·유선 보고만 하면 되느냐"는 질의에 대해서는 "대통령비서실은 2~30분 단위로 유선 보고를 했기 때문에 대통령은 직접 대면 보고를 받는 이상으로 상황을 파악했다고 생각한다"는 답변을 적었다. 

▲ '시시각각' '신속히 알 수 있도록' '충분히 보고' '2~30분 단위' 등 형용사와 수식어 같은 문구는 김기춘이 표현한 것이다. 그중 '2~30분 단위'는 특히 김기춘이 표현한 것을 기억하고 있다.

(※ 기자 주: 김기춘은 2014년 7월 10일 국회 세월호 국조특위에서 위와 같이 답변했다. 김기춘이 "세월호 참사 당시 대통령이 어디에 있었는지 모른다"고 답변했던 국회 운영위 업무 보고로부터 3일 뒤였다. 즉, 당시 시점은 이미 김기춘이 '세월호 7시간' 미스터리의 시발점을 만든 이후였다.)

▲ 비서관급 이하 실무진은 과감한 표현을 발상하기 어렵다. 실무자가 그런 답변을 하다가 국회의원이 소리를 지르면서 따지면 대통령비서실장도 난감해지기 때문이다.

▲ 따라서 김기춘이 답변하고 조절할 수 있는 범위 내에서 예상 답변을 마련해야 했기 때문에 실무자는 무리한 표현은 잘 만들지 않는다.

▲ 국가안보실이 왜 첫 보고 시간을 10시로 정리했는지는 알지 못한다. 제가 자료를 취합하기 전에 이미 그렇게 정리돼 있었다. 

▲ 그래서 국가안보실에 "10시의 의미가 '보고서 발송 시간'인지 '대통령이 실제로 읽은 시간'인지 알려 달라"고 요구했지만, 국가안보실은 뭔가 자꾸 숨기려고 하는 듯한 느낌을 줬다. 

▲ 회의 중에도 국가안보실에 "보고한 시간과 대통령이 보고 받으신 시간이 왜 똑같으냐"고 물었지만, 국가안보실은 아무런 답변을 하지 않았다. 그래서 그냥 넘어갔다. 

▲ 당시 국가안보실의 태도를 보고 "대통령에게 보고도 못하고 하니까, 이 사람들이 대통령비서실과 국민을 속이려고 하는 것이 아니냐"는 생각을 했다.

김장수 전 국가안보실장 ⓒKBS

▲ 김기춘은 국가안보실이 정호성의 이메일에 보고서를 보낸 시간과 박근혜가 실제로 읽은 시간을 똑같이 받아들였다. 즉, 국가안보실의 자료를 그대로 받아들인 것이었다. 

▲ 정호성이 박근혜에게 보고서를 실시간으로 전달하지 않고 모아서 일괄 보고한 사실을 알지 못했다. 

(※ 기자 주: 그럼에도 불구하고, 김기춘은 '시시각각'이라는 표현을 사용한 것이다.)

▲ "박근혜가 세월호 참사 당시 관저에 있었다"는 사실은 나중에야 알았다. "김기춘도 박근혜의 행방은 확인했을 것"이라고 생각하고 있었다.

김기춘 측은 ▲10시 17분을 일컬어 골든타임이라고 주장한 것은 청와대가 아니라 언론이었기 때문에 당시에는 별로 주안점을 두지 않았고 ▲신동철은 세월호 참사 당시 국민소통비서관이었기 때문에 국가안보실의 보고에 대해 정확히 알 수 없으며 ▲김기춘을 비롯한 대통령비서실 관계자들은 "국가안보실의 첫 보고 시간은 10시"라고 알고 있었다고 반박했다. 

(오후에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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