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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시성' "양만춘 vs 당태종"을 더 파고들었더라면…[리뷰] 한국영화 역사에 남을 대규모 고대 전투…'과도한 신파' 아쉽다
박형준 | 승인 2018.09.19 22:30

천책상장의 뼈아픈 일패: 안시성 싸움

영화 '안시성' ⓒ영화사 수작

645년, 당태종은 고구려 정벌을 결정한다. 명분은 고구려의 대막리지 연개소문이 쿠데타로 영류왕을 살해한 것과 고구려의 잦은 신라 공격이었다. 

천책상장(天策上將: 하늘이 내린 장수)라는 별명을 가진 당태종이 직접 지휘하는 군대답게, 당군은 수나라와의 전쟁 때도 끝까지 함락되지 않았던 요동성을 비롯한 5~6개의 성을 함락하면서 요동 일대를 헤집는다. 요동 내 고구려의 다음 거점은 안시성이었다.

하지만 당태종은 안시성 공격을 선호하지 않았다. 방어에 매우 유리했던 안시성 자체의 지형과 안시성주의 탁월한 능력이 마음에 걸렸기 때문이었다. 

당태종은 이를 언급하면서 "안시성주는 연개소문에 반대했고, 연개소문이 직접 안시성을 공격했지만, 끝내 성을 지켰다"는 소문도 거론했다.

이세적(李世勣)을 필두로 한 당나라 장군들은 안시성 공략을 강력하게 주문한다. 안시성을 지나칠 경우 안시성주가 보급로를 공격하는 등 게릴라전에 나설 때 겪을 곤란은 누구라도 쉽게 알 수 있었다. 

보급로를 공격할 가능성이 높은 적군을 그냥 놔둘 경우 설령 평양성을 함락시킨다고 하더라도 큰 위기를 겪을 가능성이 높다. 

추후 안시성 공략에 어려움에 빠졌을 때, 당태종의 핵심참모 장손무기(長孫無忌)도 같은 이유에서 "반드시 안시성을 함락해야 한다"는 주장을 유지했다.

연개소문도 꺾지 못한 안시성주는 과연 남다른 사람이었다. 안시성은 당태종의 친정에도 굴복하지 않고 굳건히 성을 지켰다. 

그러자 당군은 토산을 쌓아 그 위에서 공성병기를 통해 안시성의 성벽과 망루를 공격했지만, 안시성주는 목책으로 다시 보수에 성공한 뒤 반격에 나섰다.

뿐만 아니라, 토산이 갑자기 무너진 상황을 놓치지 않고 기습적으로 정예병을 동원해 토산을 점령한다. 그 순간 토산 방어 임무를 소홀히 하고 다른 곳에 가 있던 장군 부복애(傅伏愛)는 결국 분노한 당태종에 의해 참수 당한다.

토산을 되찾지 못한 당군은 결국 겨울을 맞이했고, 투르크계 철륵의 설연타가 당나라를 배신하는 일이 발생한다. 당태종은 3개월 만에 고구려에서 철군한다. 안시성주는 성루에서 떠나는 당태종에게 절을 올린다. 

영화 '안시성'의 한 장면 ⓒ영화사 수작

당태종의 철군 길은 매우 험난했다. 당태종이 직접 병사들과 함께 수레를 밀어가면서 험로를 걸어야 했던 것이다. 상황으로 보건대, 고구려가 함락당한 요동 일대의 성을 재탈환했을 가능성이 있다. 

이 때문에 "연개소문이 정적인 안시성주를 방치했다"는 가설은 설득력이 떨어진다. 중앙의 군대와 유기적 움직임이 없더라면, 성을 성공적으로 방어할 수 있는 가능성은 기하급수적으로 낮아진다.

연개소문·당태종의 공격 실패로 엿보는 안시성주의 목민관 자질

안시성주(安市城主)의 이름은 알려지지 않았다. 양만춘(楊萬春)이라는 이름이 최초로 거론되는 시기는 임진왜란 시기였다. 조선 선조 대의 조정대신 윤근수(尹根壽)가 명나라 장수로부터 전해들은 이름이었던 것이다. 즉, 명확한 근거는 없다.

다만, 각종 사극에서는 어쨌든 '안시성주'로 사람을 등장시킬 수는 없기 때문에 '양만춘'이라는 이름으로 등장한다. '삼국사기' 편찬을 주도한 김부식도 "이름이 전해지지 않아 애석하다"는 의견을 제시했던 적이 있다. 

안시성주가 친히 치룬 전투 중에는 2회의 전투가 역사적 기록에 남았다. 연개소문의 공격과 당태종의 공격이다. 안시성주는 당대 최고 맹장들의 공성전을 굳건히 방어했다는 점을 주목할 필요가 있다. 

또한, 두 맹장을 상대로 한 전투 모두 성내 동요나 반대세력의 방해책동이 있었던 것으로 보이는 정황도 없다. 따라서 성내 민심을 완전히 장악하는 등 안시성주의 목민관·정치가로서의 자질도 간접적으로 확인할 수 있다.

영화 '안시성'의 한 장면 ⓒ영화사 수작

특히 당태종과의 전투는, 당태종이 주필산에서 고구려의 15만 대군을 분쇄한 직후 진행된 것이기 때문에 더욱 의미심장했다. 

기세가 오를 대로 오른 공격군을 맞아 민심을 하나로 모아 일고의 흔들림 없이 방어한 것이기 때문이다. 안시성주가 당태종에게 안긴 패배는 당태종 개인에게 있어서도 일생일대, 또한 사상 최초의 패배였다. 

오죽하면 자신의 고구려 정벌을 끝까지 반대했던 명재상 위징(魏徵)을 거론하면서 "위징이 살아있었다면 나에게 어찌 이런 일이 일어났겠느냐"는 말을 했고, 후계자 고종에게는 "다시는 요하를 건너지 말라"는 유언을 남겼을까. 

"양만춘 vs 당태종"을 더 파고들었더라면

배우 조인성에게 영화 '안시성'은 어려운 선택이었을 수도 있다. 양만춘을 맡았던 배우는 임혁·임동진 등 사극의 거목들이었기 때문이다. 특히 KBS 대하드라마 '대조영'에서 임동진이 맡았던 덕장 양만춘이 남긴 인상은 대단히 강렬하다. 

이를 의식한 것인지, 조인성이 구현하는 양만춘은 임동진의 양만춘과 방향이 다소 다르다. 하지만 대선배가 구현했던 양만춘의 이미지가 여전하기 때문에 비교는 피할 수 없을 것으로 보인다.

'안시성'은 한국영화 사상 손꼽힐만한 대규모 전투를 시종일관 재현했다. 각종 공성병기와 압도적인 인해전술이 안시성으로 닥쳐올 때의 위기감은 관객에게도 그대로 전달될 정도였다. 

중국 드라마 '신삼국' '대군사 사마의' 등에서 볼 수 있었던 압도적인 규모의 군세를 스크린으로 확인할 수 있다. 각종 공성병기와 공성·수성전도 생생하게 목격할 수 있다.

하지만 '덕장 양만춘'을 묘사하는 과정에서 지나친 신파가 가미돼 다소 유치해 보이기까지 하는 것은 매우 안타깝다. 등장할 이유가 전혀 없어 보이는 캐릭터도 있을 정도였다. 

낡은 신파의 비중을 줄이고, 당태종에게 시선을 좀 더 할애했더라면 보다 입체적인 영화가 될 수 있었을 것으로 보인다. 

기자 개인적인 생각으로, 박성웅이 연기하는 당태종은 '신삼국'의 조조(천졘빈 분)를 다소 참고한 것으로 보인다. 안시성 내 신파에 몰두하느라 당태종은 너무 자제를 시킨 것이 아쉽게 느껴진다. 

당태종과 안시성주의 내면을 파고들어 두 사람의 각자 처한 상황에 맞는 심리가 관객에게도 전달됐더라면 그 박진감도 배가됐을 듯하다.

영화 '안시성'의 한 장면 ⓒ영화사 수작

다만, 연개소문과 안시성주의 불화를 내세우면서 이야기를 곡해하는 단계까지 가지 않은 것은 그나마 다행이라고 할 만하다. 

역사적 기록에 남은 불화를 내세우면서도 기록의 행간을 세심하게 배려한 결과로 보인다. 어쨌든 연개소문도 그 평가 방향의 유무를 떠나 당시 최고의 맹장 중 1명이었던 것은 분명하기 때문이다.

여담으로 '안시성' 뿐 아니라, 모든 사극에 바라는 바를 남길 필요성을 느낀다. 제발 등장인물들에게 투구를 씌워주길 바란다. 

아무리 주인공의 얼굴을 관객에게 보여주는 것이 중요하더라도, "전쟁터에서 투구를 벗는다"는 것은 "사격장에서 방탄모를 쓰지 않는 것"이나 "안전벨트 없이 고속도로를 질주하는 것"과 다름없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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