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前 위기관리센터장 "김장수, 朴에 '세월호 구명조끼 많다' 보고"[김기춘·김장수·김관진의 세월호 참사 보고서·훈령 조작 재판 ⑤] "대통령 보고 시각·위기관리지침 변경, 김기춘 주재 회의에서 결정"
박형준 | 승인 2018.09.20 13:40

* 기사 수정 및 내용 추가: 2018. 9. 20. 15:38, 17:13

서울중앙지법 형사합의30부(부장판사 황병헌)는 20일 김기춘 전 대통령비서실장·김장수 전 국가안보실장·김관진 전 국가안보실장·윤전추 전 청와대 부속비서관실 행정관의 '세월호 7시간' 관련 대통령 보고서 조작 및 대통령훈령 국가위기관리기본지침 불법 변개 사건의 공판기일을 진행했다. (이하 등장인물 호칭 생략)

이날 공판에 증인으로 출석한 사람은 신인호 전 국가위기관리센터장(現 육군 소장)이었다. 신인호도 같은 혐의로 인해 7월 25일 군 검찰에 의해 불구속 기소된 바 있다. 현역 군인이기 때문에 별도의 군사재판을 받고 있는 것이다.

신인호는 이날 ▲세월호 참사 당시 9시 39분 이후에도 해경을 통해 참사 상황을 확인했기 때문에 '9시 30분'은 박근혜에게 상황보고서를 전달할 수 없는 시각이었고 ▲박근혜는 상황보고서를 읽지 않았기 때문에 안봉근에게 전화해서 "국가안보실장이 대통령과 통화할 수 있도록 조치해 달라"고 요청했으며 ▲김장수가 전화통화를 통해 받은 박근혜의 지시를 곧바로 해경에 전파한 시각은 10시 25분 경이었다고 증언했다.

이어 ▲김장수는 "대통령의 지시사항을 해경에 2회 전파했다"고 주장하는 것 같지만, 1회 밖에 못 봤고 ▲박근혜에게 "세월호에는 구명조끼가 많다"는 보고를 한 사람은 김장수였으며 ▲대통령에 대한 보고시각·국가위기관리기본지침 변경 등 국회 답변 관련 사항은 김기춘이 주재하는 회의에서 결정됐다고 증언했다.

다음은 신인호의 관련 증언이다.

▲ 세월호 참사 당시, 저(신인호)는 위기관리센터에서 김장수 당시 국가안보실장·김규현 당시 국가안보실 1차장에게 각종 상황을 보고했다.

▲ 사고 발생을 파악한 뒤, 해양경찰을 통해 사고 현황과 구조 상황을 파악하려고 했지만, 해경도 상황을 잘 모르고 있었다. 그래서 전국 각지의 해경에 전화를 하면서 사고를 파악했다.

▲ 이어 상황보고서 작성 및 보고를 총괄했다. 당시 상황반장이었던 백 모 육군 대령은 9시 22~31분 경 배 이름·승선인원·출항시간을 파악했고, 9시 39분부터는 구조세력 동원현황·구조인원수 등을 파악했다.

▲ 이를 토대로 완성한 보고서 초안에 보고시간으로 '9시 30분'이라고 표기한 것은 사실이다. 당시 상황과 다른 내용이고, 9시 30분은 초안을 만들 수 없는 시간인 것도 맞는다.

김장수 전 국가안보실장 ⓒKBS

▲ 상황보고서 1보가 실제로 완성된 시간은 9시 57분 이후였다. 초안을 작성한 뒤에는 김장수에게 보고했고, 김장수는 "대통령 관저로 보고서를 보내라"고 말했다. 

▲ 상황보고서는 2~3부 이상 준비해서 대통령 관저에 보냈다. 통상적으로는 김장수의 수기 결재를 받은 뒤 보내지만, 당시에는 상황이 위중했기 때문에 2부 이상을 같이 보냈다.

(※ 기자 주: 백 모는 7월 3일 공판에서 "대통령 관저에 상황보고서를 보내기 전, 김장수에게 보고서 초안을 보냈다"고 증언했다.)

▲ 저는 "김장수가 보고서 내용을 검토했는지"에 대해 기억하지 못한다. 다만, 김장수가 계속 전화를 하는 모습은 본 적이 있다.

▲ 김장수의 지시에 따라, 상황보고서를 출력해 상황병에게 "대통령 관저로 출발하라"고 지시한 것은 사실이다. 관저출발조치를 구체적으로 실행한 사람은 김 모 당시 국가위기관리센터 상황팀장(해군 대령)이었다.

▲ 분명한 것은 "대통령 관저에 상황보고서를 2부 이상 보냈다"는 것이다. "2부 이상 보냈다"는 것은 세월호 참사 조사보고서를 보고 생각한 내용이다.

▲ 김장수가 위기관리센터에 다시 내려왔던 시간은 10시 13분이었다. 김장수가 위기관리센터에 오면, 통상적으로는 제가 벙커 입구까지 나가서 모셨지만, 당시에는 나가지 않았다.

▲ 박근혜 전 대통령은 전달된 상황보고서를 읽지 않았고, 김장수의 전화도 받지 않았다. 그래서 저는 안봉근 당시 청와대 제2부속비서관에게 전화해서 "국가안보실장이 대통령과 통화할 수 있게 조치해 달라"고 말했다.

▲ 얼마 지나지 않아 박근혜와 김장수의 전화통화가 연결됐고, 김장수는 박근혜의 지시를 전파했다.

▲ 김장수는 김 모로부터 "세월호에는 구명조끼가 많다"는 보고를 들었고, "당시 시각은 10시 17분 이후"라고 생각한다. 김장수는 이를 박근혜에게도 보고했다.

(※ 기자 주: 박근혜의 그 유명한 '구명조끼' 발언의 근원을 확인할 수 있는 증언이었다. 즉, "박근혜는 김장수와의 전화통화 이후 상황 정보를 거의 확인하지 않았다"는 간접 증거로 보일 여지가 컸다.)

계속 바뀐 2014. 4. 16. 대통령에 대한 첫 보고 시간

▲ 해경에 박근혜의 지시를 전파한 시점은 10시 25분 경이었다. 김장수가 박근혜의 전화를 받은 시점은 해경에 지시사항을 전파하기 직전이었다.

(※ 기자 주: 박근혜 정부는 "박근혜가 첫 유선 지시를 한 시각은 10시 15분"이라고 주장했지만, 검찰은 "10시 22분"이라고 결론 내렸다.)

▲ 김장수는 박근혜의 지시사항을 큰 목소리로 말했다. 상황실 요원들 모두가 들을 수 있게 하기 위해서였다. 

▲ 김장수는 "대통령의 지시사항을 해경에 2회 전파했다"고 주장하는 것 같지만, 제가 본 것은 1회 밖에 없었다.

▲ 나중에 박근혜와 김장수의 첫 전화통화 시각을 10시 15분으로 규정한 이유는 김 모의 설명이었다.

▲ 구체적으로 이야기하지는 않았지만, 김장수에게도 '10시 15분'을 설명한 이유는 "국회에서 그렇게 대응하라"는 취지였다. 

▲ 국회에 제출한 답변 자료에도 그렇게 적혔을 것으로 추정한다. "'10시 15분'은 잘못된 시각이었다"는 사실은 검찰 수사 이후에야 알았다. 

▲ 대통령에 대한 첫 보고시각은 9시 30분 → 9시 50분 → 10시로 각각 수정됐던 바 있다. 9시 50분에서 10시로 수정된 이유는, 당시 상황이 기록된 메모를 확인한 것 때문이었다. 

▲ 보고시각을 비롯해 국회에 보낼 각종 답변 자료는 김기춘이 주재하는 회의에서 정리됐다. "10시로 수정하라"고 지시한 사람은 제가 아니다. 또한, 박근혜가 보고서를 읽었는지 여부는 확인하지 못했다.

▲ 국가위기관리기본지침은 김기춘이 주도하는 회의에서 종합적 논의를 거쳐 국회의 국정조사특위 조사 이후 변경됐다. 저는 관련 정황을 김관진에게 보고했다.

▲ 지침 개정검토보고서를 작성해 김관진의 승인과 지시를 받은 뒤 시행했다. 또한, 김기춘은 회의에서 "세월호 사고 당시, 대통령과 원활한 소통을 했다"는 말을 했다.

김기춘 전 대통령비서실장 ⓒKBS

김장수 측은 ▲상황보고서 작성은 10분 정도 여유를 두고 당겨질 수도 있기 때문에 "초안은 무조건 10시 이후 작성됐다"고 볼 수 없고 ▲김장수는 자신의 보좌관을 대통령관저로 보내는 등 다양하게 박근혜와의 연락을 시도했으며 ▲상황병이 대통령관저로 출발한 시간은 상황실 CCTV로 정확하게 확인된 바는 없다고 반박했다.

또한 ▲김장수가 박근혜와 통화 중이었어도 보고는 충분히 할 수 있고 ▲당시 김장수는 박근혜와의 전화통화를 여러 번 시도했으며 ▲김장수는 대통령에게 보고서도 올리지 않은 채 전화를 하는 사람이 아니라는 등 "김장수는 10시 22분이 아니라 10시 15분에 박근혜와 전화통화를 했다"는 주장을 강하게 유지했다.

이어 김기춘 측은 ▲박근혜의 책임을 회피시켜 주기 위해 최초 보고시간을 앞당긴 것은 아니고 ▲추후 확인 결과에 따라 최초 보고시간을 바꾼 것이라고 반박했다.

김관진 측은 ▲김관진은 훈령 관련 법제 업무를 담당한 적이 없고 ▲김관진은 2014년 6월 한 달 동안 국가안보실장·국방부 장관을 겸직했기 때문에 김규현 당시 국가안보실 1차장이 세월호 참사 관련 대응 업무를 총괄했으며 ▲김관진은 신인호에게 "지침을 임의로 삭제·수정하라"는 취지의 지시를 한 적이 없다고 반박했다.

이렇듯 신인호는 김기춘·김장수 등에 대해 유리한 취지의 증언도 했지만, 기본적으로는 곤란할 만한 증언을 했다. 특히 인상적이었던 것은 "박근혜가 '세월호에는 구명조끼가 많다'는 보고를 들은 시각은 오전 10시 22~5분 무렵이었다"는 취지의 증언이었다.

즉, 신인호의 증언대로라면, 박근혜는 오전 10시에 전화통화로 들은 이야기를 오후 5시에 중앙재난안전대책본부에 가서 거론한 것이었다. "김장수와의 전화통화 이후, 박근혜는 이유를 막론하고 세월호 참사 정보를 전혀 파악하지 못했다"고 해석될 소지가 다분한 증언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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