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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장수, 10시 이후 朴에 보낼 세월호 첫 보고서 검토 시작"[김기춘·김장수·김관진의 세월호 참사 보고서·훈령 조작 재판 ⑥-1] "세월호 참사, 朴에 대한 보고시각 10시…김기춘 주재 회의 이후 결정"
박형준 | 승인 2018.10.17 13:35

서울중앙지법 형사합의30부(부장판사 황병헌)는 17일 김기춘 전 대통령비서실장·김장수 전 국가안보실장·김관진 전 국가안보실장·윤전추 전 청와대 부속비서관실 행정관의 '세월호 7시간' 관련 대통령 보고서 조작 및 대통령훈령 국가위기관리기본지침 불법 변개 사건의 공판기일을 진행했다. (이하 등장인물 호칭 생략) 이날 공판에는 김기춘 측·김장수 측만이 출석했다.

이날 공판에 증인으로 출석한 사람은 김 모 전 국가위기관리센터 상황팀장이었다. 김 모는 세월호 참사 당시 국가위기관리센터 상황팀장으로서 근무한 적이 있었다. 

김 모는 이날 ▲세월호 참사 당시 상황보고서 1보의 보고시각은 9시 30분으로 표기됐지만 9시 56분에 확인한 사항이 포함돼 있었기 때문에 실제로는 보고할 수 없는 시각이었고 ▲김장수는 10시 이후 약 10분 동안 상황보고서 1보 초안을 검토했으며 ▲김장수는 해경으로부터 전달 받은 '세월호 내 구명조끼 보유 상황'을 박근혜에게 보고한 것으로 알고 있다고 증언했다.

이어 ▲위기관리센터는 박근혜에 대한 첫 보고시간을 9시 50분으로 규정했다가 2014년 6월 이후 10시로 바꿨고 ▲바꾼 이유는 "신인호 당시 국가위기관리센터장이 김기춘이 2014년 6월 주재한 수석비서관 회의에 다녀온 뒤 '10시로 정리하기로 했으니 향후 대응자료 등에 반영하라'고 지시했던 것"이었다고 증언했다.

다음은 김 모의 관련 증언이다.

▲ 세월호 참사 당시 위기관리센터는 YTN의 속보를 보고 상황을 인지했고, 이후에는 해양경찰청에 전화해서 사실을 확인하느라 정신이 없었다. 해상재난은 해경의 관할이었기 때문에, 구조작업도 해경을 중심으로 진행됐다.

▲ 상황팀은 해경으로부터 확인한 내용을 바탕으로 박근혜 당시 대통령에게 올릴 상황보고서 1보를 작성했다. 처음에는 상황팀원인 이 모 경감이 보고서를 작성했다가, 시간이 촉박해져 제가 직접 마무리했다.

김장수 전 국가안보실장 ⓒKBS

▲ 1보의 보고시각은 9:30으로 표기됐다. 해경과의 전화통화 녹취록을 확인한 결과, 상황팀은 9시 22분부터 배의 명칭·출항시각·승선인원·배의 크기·구조세력 및 동원현황을 확인한 것으로 적혀 있었다.

▲ 상황보고서 1보에는 "56명을 구조했고, 서거차도로 이동 예정"이라는 내용이 적혀 있었다. 하지만 해경으로부터 해당 내용들을 확인한 시각은 9시 54~56분이었기 때문에 9시 30분에는 보고할 수 없는 내용이었다.

▲ 당시 김장수에게는 구조인원을 포함한 보고를 했다. 워낙 큰 사건이었기 때문에 구조인원에 대한 최초 파악은 굉장히 중요한 문제였다. 

▲ 실제로 1보를 출력한 시각은 9시 57분이었고, 10시 이후 상황병을 시켜 김장수에게 보고서를 보냈다. 대통령에 대한 보고는 김장수의 검토 뒤에 가능한 일이었다.

▲ 김장수가 1보 초안을 검토하는 동안에도 상황팀은 계속 해경에 전화해 구조인원 등을 확인했다. 10시 5분에도 구조인원 등을 확인했다. 1보 완성본을 보내기 전이었다.

▲ 상황팀에서는 10시 12~13분 무렵까지 해경을 통해 구조인원을 확인하려고 했다. 이후 김장수는 "1보 초안 검토를 마쳤으니 대통령관저에 보고서를 보내라"고 지시했다. 지시를 전달한 사람은 신인호였다.

▲ 김장수는 두 번째 상황병이 출발한 뒤 위기관리센터에 내려온 것으로 기억한다. 당시 김장수의 보좌관이었던 임 모 당시 육군 중령(現 육군 대령)은 같이 내려오지 않은 것으로 기억한다.

(※ 기자 주: 김장수의 보좌관 동행 여부는 논쟁 사안이다. 김장수 측은 "임 모도 상황보고서를 빨리 전달하기 위해 김장수의 관용차를 타고 관저에 갔다"고 주장하고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김 모는 "김장수의 보좌관은 통상 보고서 전달을 하지 않고, 그런 기억도 없다"며, "임 모가 직접 관저에 보고서를 전달했다면 납득하기 어려운 일"이라고 증언했다. )

▲ 김장수는 신인호로부터 간략하게 상황을 보고 받은 뒤, 바로 박근혜와의 전화통화를 시도했다. 하지만 박근혜는 전화를 받지 않았다. 얼마 지나지 않은 10시 22분 경 김장수는 긴장된 상태로 1~2분 동안 전화통화를 한 뒤 박근혜의 지시사항을 신인호에게 전달했다. 

(※ 기자 주: 김장수 측은 "10시 7분에 박근혜에게 전화를 했지만, 박근혜가 전화를 받지 않았고, 박근혜가 10시 15분 김장수에게 전화를 해서 박근혜와 첫 전화통화를 했다"는 주장을 강경하게 유지하고 있다. 10시 22분 통화에 대해서는 "짧고 별 내용 없이 다시 이루어진 통화였다"고 주장하고 있다.)

계속 바뀐 2014. 4. 16. 대통령에 대한 첫 보고 시간

▲ 신인호는 메모를 저에게 전달하면서 "해경에 전파하라"고 지시했고, 저도 곧바로 해경 상황실에 전화해 지시사항을 전파했다. 긴급한 사항이라 즉각 전달했다.

▲ 김장수는 "박근혜와 2회 통화했다"고 주장하는 것 같지만, 저는 1회만 봤다. 그 1회의 통화가 바로 제가 박근혜의 지시사항을 전달 받기 전 통화였다.

▲ 김장수는 "세월호에 구명조끼가 얼마나 있는지" 궁금해 했다. 그래서 해경에 전화해서 관련 정보를 확인한 뒤 신인호·김장수에게 동시에 구두로 보고했다. 김장수는 박근혜와 통화하면서 구명조끼 관련 내용을 전달한 것으로 알고 있다.

(※ 기자 주: 검찰에 따르면, "구조조끼 관련 내용이 청와대 내 문건에 적히기 시작한 시점은 2014년 6월부터였다"고 한다.)

▲ 위기관리센터는 박근혜에 대한 첫 보고시간을 9시 50분으로 규정했다가, 2014년 6월 이후 10시로 바꿨다. 신인호는 2014년 6월 김기춘 주재 수석비서관 회의에 다녀온 뒤 "10시로 정리하기로 했으니 향후 대응자료 등에 반영하라"고 지시했다.

(※ 기자 주: 이것이 사실이라면, 김기춘에 대한 유죄 선고 가능성은 매우 높아진다. 신인호는 김 모에게 관련 지시를 한 것을 부인하고 있다.)

김기춘 전 대통령비서실장 ⓒKBS

반면, 김장수 측은 ▲"김장수가 1쪽 분량의 상황보고서 1보 초안을 10분 이상 검토했다"는 것은 이해가 가지 않는 일이고 ▲임 모는 분명히 김장수의 관용차를 타고 대통령관저에 보고서를 전달하러 갔으며 ▲김 모는 "김장수가 10시 20분 이후 민경욱 당시 청와대 대변인에게 브리핑할 내용을 전달할 목적으로 민경욱과 전화통화한 것"을 박근혜와의 전화통화로 오해한 것으로 보인다고 반박했다.

김기춘 측은 ▲보고시각을 10시로 수정한 회의는 '김기춘 주재 회의'가 아니라 '정무수석실 주관 행정관들의 대응자료 작성 준비 회의'였고 ▲유민봉 전 청와대 국정기획수석(現 자유한국당 의원)은 검찰에서 "국가안보실이 아니면 대통령에 대한 최초보고시각을 알 수 없기 때문에 대통령비서실은 국가안보실에서 전달한 내용을 그대로 대통령에 보고할 뿐"이라고 진술했다고 반박했다.

즉, 김장수 측은 "10시 직후 박근혜와의 전화통화를 시도했다"는 주장을 유지하고 있었고, 김기춘 측은 "대통령비서실은 국가안보실이 알려주지 않고서는 국가안보실의 대통령에 대한 첫 보고시각을 알 수 없다"는 주장을 유지하고 있었다.

(저녁에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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