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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고법원 설치 무산, '양승태 수뇌부' 앙심의 방향이 비겁한 이유[임종헌의 사법농단 혐의 분석 ③] 상고법원 설치되면 대통령 영향력 ↓ 대법원장 영향력 ↑
박형준 | 승인 2019.01.10 14:10

양승태 사법부가 상고법원을 구상하기까지

2017년 기준 대법원에 접수된 상고 사건은 총 62,075건이었다. 대법관 14명 중 대법원장은 전원합의체 사건에만 참여하고, 법원행정처장은 아예 재판 업무에서 제외된다. 12명의 대법관이 1인당 5천 건에 가까운 상고 사건을 맡고 있는 셈이다.

대법관들의 '과로사'를 방지하기 위해, 상고심절차에 관한 특례법 제4조는 민사·가사·행정소송과 관련해 일부 중요 사안 외에는 심리불속행 기각을 하게끔 정해두고 있다. 심리를 하지 않고 재판을 마무리할 수 없는 제도로써, 심리불속행 기각 판결문에는 다음과 같은 문장이 적혀 있다.

 "이 사건 기록과 원심판결 및 상고이유를 모두 살펴보았으나, 상고인의 상고이유에 관한 주장은 「상고심절차에 관한 특례법」 제4조에 해당하여 이유 없음이 명백하므로, 같은 법 제5조에 의하여 상고를 모두 기각하기로 하여, 관여 대법관의 일치된 의견으로 주문과 같이 판결한다."

"이유 없음이 명백"한 이유는 알지 못한다. 뿐만 아니라, 아무리 심리불속행 기각을 미친 듯이 해도, 접수되는 상고 사건이 더 많다. 효율성과 신뢰성 양 측면 모두에서 문제가 발생하고 있는 것이다.

양승태 전 대법원장 ⓒKBS

심리불속행 기각 제도 이전에는 소송촉진특례법에 따른 상고허가제가 있었다. 쉽게 말해, 고등법원의 허가를 받아야만 대법원으로부터 상고심 재판을 받을 수 있었던 것이다. 

하지만 "재판을 (최소한) 3번 받을 수 있는 국민의 기본권을 침해한다"는 위헌 결정을 받아 폐지됐던 바 있다. 

상고심 폭증에 대한 대응 방안으로는 ▲기존 심리불속행 기각 제도 유지 ▲대법관 증원 ▲상고허가제 등 3가지 방법이 거론됐다. 심리불속행 기각 제도·상고허가제의 문제점은 위에서 거론한 것과 같다.

대법관 증원은 가장 효율적이라는 장점이 있지만, 보수·진보 양 진영의 정치싸움으로 번질 가능성이 높다. 보수 진영은 진보 성향 법조인 단체의 대법원 진출을 반가워하지 않는다. 

반대로, 진보세력이 정권을 잡았을 경우에는 180도 다른 양상이 발생할 것이다. 대법원이 정파 간 권력다툼 무대로 변질될 가능성을 배제하기 어렵다. 정파적 다툼이 더럽고 추잡해지는 본질은 바로 '밥그릇 싸움'이다. 대법관 직을 둘러싼 '밥그릇 싸움'이 격화될 우려가 더욱 커지는 것이다.

뿐만 아니라, 전원합의체 심리 어려움은 물론, 대법관 4명씩 구성되는 각 소부 사이에 다른 법률 해석이 이어질 가능성도 발생한다. 즉, '법령의 해석 기준 제시'라는 대법원의 역할이 무색해질 우려가 있다. 

이렇듯 제도 각각마다 장·단점이 뚜렷하기 때문에 쉽게 답을 낼 수 없는 상황이었다. 그런 상황에서 양승태 전 대법원장 재임 당시 대법원은 '상고법원 설치'라는 새 제도를 제시했다.

상고법원 설치되면 대통령 영향력 ↓ 대법원장 영향력 ↑

상고법원 설치안은 ▲상고심 재판 기관을 대법원·상고법원으로 분리해서 ▲전원합의체 등 주요 사건은 대법원이 맡고 ▲규모가 작거나 통상적인 재판은 상고법원이 맡는다는 안을 말한다.

김기춘 전 대통령비서실장·우병우 전 청와대 민정수석 등 박근혜 정부의 검찰 출신 실세들이 상고법원 설치에 반대한 이유는 다음과 같다.

▲ 현행 제도에 따르면, 대통령은 대법관 14명 임명에 관여함으로써 상고심에 영향을 미칠 수 있다. 하지만 상고법원 설치안에 따르면, 상고법원 판사 임명권은 대법원장이 가진다. 상고심에 미칠 대통령의 영향력이 줄어들 수 밖에 없다.

▲ 검찰이 피곤해진다. 상고법원 설치안에 따르면, 상고법원 판결에 "판례 위반 및 명령·규칙 등 위헌 여부" 등 문제 제기를 하려고 하면 대법원에 해야 한다. 결국 4심제가 되고, 검찰 입장에서는 벽이 하나 더 만들어지는 것이다.

(※ 기자 주: 국민도 소송비용 증가·절차의 복잡함 등으로 인해 피곤해질 가능성이 높다. 다만, 김기춘·우병우가 국민의 불편을 우려할 사람일 가능성은 낮기 때문에 대상을 검찰로 한정했다.)

박병대·고영한 전 법원행정처장(대법관) ⓒKBS

상고법원이 설치되면, 대법원장의 영향력이 더욱 커지는 것이다. 뿐만 아니라, 대통령·국회의 대법관 임명 과정 관여는 명목상으로나마 '민주적 정당성'을 위한 배려이기도 했다. 그렇기 때문에 대법원장이 일방적으로 상고법원 판사를 임명할 경우에는 그 민주적 정당성이 줄어들 수 밖에 없다.

가뜩이나 '제왕적 대법원장' 관련 지적이 나오는 판국에, 상고법원 판사 임명권까지 대법원장이 장악하면 제왕을 넘어 아예 '황제 대법원장'이 출현할 가능성이 높아진다.

국회는 2014년 12월 19일 홍일표 현 자유한국당 의원이 대표 발의하는 등 총 168명의 국회의원이 발의하는 형식으로 '상고법원 설치안'이 발의됐다. 하지만 각계에서 상고법원을 비판했고, 국제인권법연구회 산하 '인권보장을 위한 사법제도 소모임(약칭 '인사모')'을 중심으로 법원 내부에서도 상고법원에 대한 강경한 비판이 제기됐다. 

이에 따라, 양승태 대법원의 비원이었던 상고법원 설치안 통과는 2016년 5월 29일 제19대 국회 임기만료로 법안이 자동 폐기되는 등 끝내 무산됐다. ▲양승태 당시 대법원장 ▲박병대·고영한 당시 법원행정처장(2016년 2월 직책 승계) ▲임종헌 당시 법원행정처 차장이 품었을 '앙심'의 크기를 짐작할 수 있는 바였다. 

그리고 그 '앙심'은 그들 모두를 파멸로 이끌었다. 그들은 '인사모'에 대해 "국제인권법연구회는 진보 성향 법관 모임 우리법연구회 출신들이 대부분"이라는 사실을 매개로 "그들은 우리법연구회의 후신으로서 이념적·정파적으로 편향돼 있고, 양승태 대법원장의 정책은 무조건 반대한다"는 인식을 하기 시작했다.

임종헌 전 법원행정처 차장 ⓒKBS

기자의 관점에서, 이런 인식은 비겁해 보이는 측면이 있다. 이는 기자가 '인사모' 등 일부 법관들을 옹호하려는 생각을 가져서 비롯된 관점이 아니다.

상고법원 설치를 무산시킨 핵심 세력은 김기춘·우병우 등 박근혜 정부 청와대 내 검찰 출신 인사들이었다. "그들에게는 아무런 지적도 못한 채 두들겨 팰 상대로 가장 만만한 상대를 골랐다"는 인식이 들지 않을 수 없기 때문이다. 

"청와대·국회·정치세력·법원 내 재야세력 등 상고법원 반대세력 중 가장 약해서 두들겨 패기 좋은 세력을 골랐다"는 생각에 '비겁하다'는 인식을 한 것이다.

(다음에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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