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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제징용 소송에 대한 사법부의 걱정 "돈 너무 많이 든다"[임종헌의 사법농단 혐의 분석 ⑨] 양승태 사법부 "강제징용 보상금 1억은 너무 많아, '270~800만 원 보상' 참고해야"
박형준 | 승인 2019.01.21 13:45

양승태 사법부 "독일 재단 참고해서 강제징용 피해자 보상금 규모 줄여야"

검찰에 따르면, 임종헌 당시 법원행정처 기획조정실장은 2013년 12월 사법정책실 심의관에게 다음과 같이 지시했다.

 "강제징용 피해자들의 민사소송 재상고심과 관련해, 독일의 기억, 책임, 미래 재단 등 다른 나라의 보상 및 배상 관련 유사 사례를 연구해서 재판의 전개 가능한 방향 등을 검토해라.

 강제징용 사건의 잠재적 원고는 약 20만 명이다. 1명당 1억 원씩만 보상하더라도, 보상의 규모는 20조 원에 이른다. 소멸시효를 엄격히 볼 필요가 있다."

이렇게 해서 작성된 문건은 "독일의 기억, 책임, 미래 재단 검토"였다. 이 문건은 권순일 당시 법원행정처 차장(현 대법관·중앙선거관리위원장)을 거쳐 차한성 당시 법원행정처장(대법관)에게 보고됐다.

사실이라면, 상당히 심각한 문제라고 할 수 있다. 법원은 사안의 법리적 옳고 그름만 판단하면 그만이다. 20조 원에 이르든, 200조 원에 이르든, 그건 사법부가 걱정해야 할 문제가 아니다. 

임종헌 전 법원행정처 차장 ⓒKBS

이 문건에는 다음과 같이 강제징용 소송 재상고심의 시나리오들을 지시했다.

▲ 전개 가능한 재판 방향은 재상고심 기각·소부에서 새 쟁점에서 판단한 뒤 환송·대법원에서 조정이나 화해 시도·사법자제론에 기한 판단·전원합의체에서 판단 등 5개였다.

(※ 기자 주: 사법자제론은 행정법상 통치행위를 설명하기 위한 이론 중 하나로써, "이론상으로는 통치행위도 사법권의 영향력이 미치지만, 사법부는 사법의 정치화를 막기 위해서 정치문제에 대해 자제하는 것이 좋다"는 취지의 이론이다. 

대법원은 통치행위에 대해 "특별한 사정이 있으면 제한적으로 사법권의 영역에서 배제될 수 있다"는 입장을 유지하고 있다.)

▲ 대법원이 2012년 5월 24일 상고심에서 원고 승소 취지로 판결한 것이 확정되지 않도록 재상고심을 지연해서 처리할 경우, 손해배상액을 새로운 쟁점으로 판단해 파기환송할 수 있다.

▲ 서울고등법원은 1인당 8천만 원에서 1억 원 내외의 배상액을 인정했지만, 이는 강제동원 관련 정부 보상액 2천만 원 등과 비교하면 지나치게 큰 금액이다. 

▲ 따라서 "강제징용 피해자 약 20만 명에게 1인당 1억 원씩 배상금을 지급하면 약 20조 원이 필요하기 때문에 배상액이 너무 많다"는 이유로 파기환송하면서, 파기환송심에서 화해·조정으로 끝내는 것이 바람직하다.

▲ 대법원은 '사법자제론'을 근거로 원고의 청구를 기각하면서, '진지한 논의에 기반을 둔 배상'이 이루어지기 위한 재단이 설립되면, 소멸시효 진행을 막지 않는 방법을 채택해서 소송 제기 가능성을 줄여야 한다.

권순일 중앙선거관리위원장(대법관) ⓒKBS

▲ 대법원 상고심 선고가 확정되면, 소멸시효는 2015년 5월 24일 완성된다. 소멸시효가 지나기 전에 보상입법을 추진하면, 1인당 약 1억 원을 보상해야 한다. 

▲ 하지만 소멸시효가 지난 뒤 보상입법을 추진하면 원고들의 법률적 청구가 불가능한 상황에서 보상이 진행되기 때문에, 독일에서 1인당 270~800만 원을 보상한 것을 참고해 보상할 수 있다. 즉, 액수를 줄일 수 있다.

▲ 또한, 소멸시효가 완성되기 전에 소송이 제기됐을 경우에는 판결로 배상하되, 소멸시효 완성 이후 소송이 제기된 이후에는 원고 패소 판결을 할 수 있다. 

▲ 특별법을 통해 일본 전범 기업들을 포함한 한국과 일본의 기업들이 출연해 재단을 설립할 수도 있다. 그럴 경우 이 재단만을 상대로 소송을 제기하도록 할 수 있다.

▲ 이렇게 되면 훨씬 적은 금액으로 사건을 해결할 수 있다. 다만, 재단 설립 이후 소멸시효 진행을 중단시키지 않도록 해야 한다.

간단히 요약하면 ▲가장 바람직한 방법은 "돈이 너무 많이 든다"는 취지로 파기환송해서 서울고법에서 조정·화해를 시도하는 것이고 ▲소멸시효 문제와 '보상 재단'을 잘 활용해서 보상액을 줄이는 방법도 있다는 취지의 보고였다.

다시 강조하지만, 도대체 왜 사법부에서 보상액 규모를 줄이기 위해 고민해야 하는지 원칙적 상식의 관점에서는 이해하기 어렵다. 또한, 이 내용이 사실이라면 "사법부가 실상 행정부에 종속됐던 것은 아니냐"는 의문을 제기할 수도 있다.

차한성 전 대법관 ⓒKBS

박정희의 '이중배상금지' 발언과 맞물리는 양승태 사법부의 소송 검토

만약 재상고심과 관련해 정말로 "돈이 너무 많이 든다"는 취지의 판결을 했다면, 이는 사실상 '사법부의 통치행위'라고 규정할 수 있었을 것이다. 

뿐만 아니라, 사법부의 옛 역사를 망각한 판결이 됐을 가능성이 있다. 헌법 제29조 제2항에는 "공무원은 법률상 보상 외 따로 배상을 청구할 수 없다"는 내용이 규정돼 있다.

헌법재판소가 없었던 1971년에는 대법원이 위헌법률에 대한 심사권을 가지고 있었다. 당시 대법원은 전원합의체 판결을 통해 "이중배상금지는 위헌"이라고 판단했다. [대법원 1971. 6. 22., 선고, 70다1010, 전원합의체 판결](링크 클릭)

그러자 박정희 당시 대통령은 "나라 형편을 모르는 자들이 아니냐"면서 격분했고, 이는 제1차 사법파동의 원인 중 하나가 됐다. 현행 헌법 규정에도 적시된 이중배상금지는 박정희가 이후 유신헌법에 못 박은 뒤 이어진 것이다.

강제징용 피해자들의 소송과 관련해 사법부에서 "돈이 너무 많이 든다"는 검토를 했던 사건은, 박정희의 당시 발언 "나라 형편을 모르는 자들이 아니냐"를, 2010년대 사법부가 충실히 이은 기이한 현상이라고 할 수 있다.

(다음에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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