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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킹덤' 욕망의 독초가 만든 참상, 처연한 좀비 아포칼립스
박형준 | 승인 2019.02.01 14:10

※ 이 기사에는 드라마 '킹덤'에 대한 스포일러가 다수 노출돼 있습니다. 주의 바랍니다.

고난의 시대, 처연한 좀비 아포칼립스

 "삼가 신들이 보건대 요즘 정무(政務)가 거듭 쌓여 있어 눈앞에 걱정이 가득합니다. 여름과 가을 이후로 재변이 더욱 심하여 3개월에 걸친 장마로 팔도가 흉년이 들었고 괴질이 유행하여 시체가 즐비하였습니다." - 순조실록 24권, 순조 21년 10월 18일 을미 2번째 기사(링크 클릭)

 "올해는 지난 가을 큰 흉년을 당한 나머지 애달픈 우리 경기(京畿)와 호서(湖西)의 백성들이 어떻게 살아간단 말이냐? 들어가 보면 방마다 텅 비어 있고 나와 보면 마을마다 밥 짓는 연기가 나지 않으니, 그 울부짖고 엎드러지며 서로 껴안고서 구릉에 버려짐을 면하게 될 자가 거의 없을 것이다. 

 옛사람은 필부(匹夫)·필부(匹婦)에게 신용을 얻지 못하는 것으로도 오히려 수치로 삼았거든, 더구나 나는 백성의 부모가 되어 팔도의 백성으로 하여금 항상 배를 두드리며 배불리 먹는 즐거움을 누리지 못하게 하고, 흉년과 기근(飢饉)으로 한갓 몇 만 명의 백성이 떠돌다가 쓰러지는 근심을 빚게 하면서도 구제할 수가 없으니, 오히려 무슨 마음으로 금의 옥식(錦衣玉食)인들 편안하고 아름답게 여겨지겠는가?" - 순조실록 28권, 순조 26년 1월 16일 무술 1번째 기사(링크 클릭)

넷플릭스 드라마 '킹덤'의 김은희 작가는 작품의 기본 모티프로 순조실록 내 기록을 제시했다. 그래서인지 '킹덤'에서는 '해원 조 씨'라는 가상의 가문이 세도정치를 하고 있었고, 왕은 해원 조 씨에게 휘둘린 듯한 설정이 제시돼 있다. 

실제로 순조는 건강이 좋지 않았고, 홍경래의 난 이후에는 국정에 대한 의욕을 잃어 비변사와 (신)안동 김 씨에게 국정을 맡겨 세도정치의 길을 열어 버렸다.

ⓒ넷플릭스

'킹덤'에서는 해원 조 씨의 수장 영의정 조학주(류승룡 분)의 농간으로 인해 왕이 생사초라는 정체불명의 약초를 먹은 뒤 좀비로 변했다. 

생사초를 직접 먹은 뒤 좀비가 됐을 경우에는 바이러스를 전염시키는 것이 아니기 때문에, 왕이 잡아먹은 사람들은 좀비가 된 것이 아니라 사망했다.

반면, 왕이 잡아먹어 사망한 사람의 시신을 먹었을 경우에는 좀비가 됐다. 배고픈 백성이 그 사실을 알지 못한 채 좀비의 인육을 먹은 뒤에는 바이러스가 전이돼 급격한 전염이 시작됐다. 

이는 곧 당시 의욕 부족으로 권신들에 둘러싸인 채 국정에 대한 의욕을 잃은 순조와 세도정치로 인해 극심한 피해를 입은 백성의 고통을 은유한 것으로 보인다.

하지만 순조 당대의 기록은 모티브 중 일부였던 것으로 보인다. 후궁 소생으로서 계비(김혜준 분)의 아버지가 후계를 흔드는 세자 이창(주지훈 분)의 상황은 광해군을 연상시키는 측면이 있고, 임진왜란·병자호란의 후유증에 시달리는 조선의 모습이 연상시킨다. 

이창의 스승이자 유림의 수장 격으로 등장하는 안현(허준호 분)은 전쟁 영웅인 것으로 보아 왕성한 의병장 활동을 했던 대북의 영수 정인홍을 연상시키는 측면이 있다.

17세기 조선은 그야말로 '고난의 시대'였다. 당시 임진왜란의 후유증에 시달리고 있었지만, 광해군은 임진왜란에서 비롯됐던 것으로 보이는 외상 후 스트레스 장애의 일환이었는지 궁궐공사에 미쳐 백성의 삶을 나락으로 빠트렸다. 

대중의 인식과는 달리, 공납을 쌀로 납부하는 대동법을 반대하거나 소극적이었던 사람도 사실은 광해군이었다.

광해군은 인조반정으로 실각했지만, 반정공신 내부 알력으로 인해 이괄의 난이 발생해 서북방 일대 정예군이 한순간이 사라졌고, 임진왜란의 최대 수혜자인 만주족은 정묘호란·병조호란 등 2회의 전쟁을 일으켜 수많은 사람들이 고통을 겪었다. 

2회의 호란의 후유증이 완전히 극복되지 않았을 1670~1671년에는 소빙하기의 영향으로 온갖 자연재해가 강림해 수많은 사람들이 고통에 시달린 경신대기근이 도래했다. 늙은 부모와 어린 아이를 버리고, 어머니가 자녀를 죽여 그 고기를 먹는 사건까지 발생했다.

 "연산(連山)에 사는 사가의 여비 순례(順禮)가 깊은 골짜기 속에서 살면서 그의 다섯 살 된 딸과 세 살된 아들을 죽여서 먹었는데, 같은 마을 사람이 전하는 말을 듣고 가서 사실 여부를 물었더니 ‘아들과 딸이 병 때문에 죽었는데 큰 병을 앓고 굶주리던 중에 과연 삶아 먹었으나 죽여서 먹은 것은 아니다.’고 하였다 합니다." - 현종실록 19권, 현종 12년 3월 21일 임신 2번째 기사(링크 클릭)

그리하여 '킹덤'의 좀비 아포칼립스는 처연해 보인다. '킹덤'에서도 좀비가 된 엄마가 어린 딸을 잡아먹는 장면이 제시되는 등 좀비 장르에서 대체로 금기시하는 어린이의 좀비 감염 및 사망 설정이 여러 차례 등장하는 것으로 볼 때, 위 상황은 직접적인 모티브가 된 것으로 보인다. 

아울러 시즌1 말엽에는 "역병 환자들의 행동 패턴의 열쇠는 햇빛이 아니라 온도"라는 설정이 제시됐다. 즉, 기온이 낮을수록 좀비들의 활동이 왕성해진다는 이야기다. 소빙하기로 인해 기온이 낮아져 자연재해가 연이어 터진 경신대기근의 흔적을 더욱 직접적으로 느낄 수 있다.

광해군의 한계에 대한 진한 아쉬움, 세자 이창

전쟁 상황에서 왕이 몸을 피하는 것은 지극히 정상이지만, 선조는 백성들의 피난은 모른 척한 채 도주했고, 명나라로 망명까지 하려고 했다. 그 꼴이 얼마나 한심했으면 명나라에서도 선조를 끌어내리려고 했고, 정승들이 "왕위에서 물러나라"는 요구를 하려고 했다.

이런 상황에서 약관의 나이에 분조를 이끌고 전쟁을 지휘한 광해군의 위상은 빛날 수 밖에 없었지만, 그 영광은 전쟁이 끝난 뒤 시련으로 다가온다. 아들을 질투한 선조의 핍박과 영창대군을 앞세운 소북 소속 신하들의 도전이 시작된 것이다. 

하지만 전쟁영웅인 세자를 끌어내리고 3세 된 아기를 왕위에 올리려는 미친 발상에 동의하는 신하들은 많지 않았다. 그리하여 광해군은 왕위에 올랐지만, 임진왜란 당시 보고 겪은 참상과 아버지의 핍박은 광해군을 궁궐공사에 미치게 만들었다. 

광해군은 궁궐공사에 대한 집착 때문에 실상은 대동법 시행을 반대했고, 백성으로부터 강제로 세금을 뜯는 '조도사'라는 관직을 신설해 광범위한 수탈을 자행했다. 

당쟁에 있어서도 대북, 그중에서도 이이첨이라는 특정인에게 권력을 몰아주는 등 정국 관리도 아버지의 재능에 미치지 못해 화를 키웠다.

세자 이창은 "후궁 소생으로서 계비와 그 가문의 도전을 받고 있다"는 측면에서 광해군의 처지와 비슷하다. 하지만 광해군과는 달리 온실의 화초라는 한계가 있었다. 유생들과 직접 쿠데타를 일으키려고 했을 정도로 개혁에 대한 의지는 강했지만, 아는 것이 없었다.

극이 전개될수록 이창은 서서히 성장한다. 초반에는 음식 타박을 하거나 아끼는 심복인 좌익위 무영(김상호 분)에게 농담으로라도 해서는 안 될 말인 "삼족을 멸하겠다"는 등 철 없는 도련님의 모습을 보인다. 

하지만 떠돌아다니면서 직접 백성의 참상을 목격하고, 역병 환자들의 난동을 보면서 자신의 비상식량을 풀고, 감염되지 않은 백성들을 구하려는 등 성장하는 모습을 보인다. 광해군의 행적과 정반대의 연출을 함으로써, 광해군의 한계에 대한 진한 아쉬움을 전하고 있다.

개인적으로 왕을 좀비로 만든 가상의 약초 '생사초'와 관련해서는 2007년 방영된 KBS 퓨전사극 '한성별곡-정'을 떠올리는 측면이 있다. 

'한성별곡'에서는 쥐망초라는 독초가 등장해 왕을 암살하려는 세력의 무기로 사용된다. 옥좌를 지배하려는 세력들이 가진 욕망이 가상의 독초로 표현된 것이다.

김성훈 감독과 동명이인이 연출한 영화 '창궐'은 어정쩡하게 백성을 강조하다가 혹평을 들었다. 강림대군(현빈 분)이 백성과 동화되는 과정에 대한 서사가 부족했기 때문이었다. 

하지만 '킹덤'에서는 역사적 사실을 세심하게 조화시켜 이창의 행적과 연결시키면서 이창의 성장이 자연스럽게 묘사된다.

권력에 대한 욕망을 상징하는 '독초'와 그 피해를 고스란히 입는 백성들의 좀비 감염, 그 속에서 음험한 음모들을 이겨내고 성장하는 이창의 모습은 시즌2에 대한 기대감을 키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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