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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승태 대법원, '국가면제'로 위안부 피해자 소송 기각 시도[임종헌의 사법농단 혐의 분석 ⑪] 대통령 말과 국제법 이론에 휘둘리던 '일제 피해자 소송'
박형준 | 승인 2019.02.11 14:38

대통령 말 한 마디에 휘둘린 일제 강제징용 피해자들의 소송

2015년 6월, 양승태 당시 대법원장 체제의 대법원은 일제강점기 강제징용 피해자들이 일제 전범기업을 상대로 제기한 손해배상 청구소송과 관련해, 외교부가 의견서를 제출할 수 있도록 '참고인 의견 제출제도'를 도입했다.

하지만 청와대와 외교부는 의견서 제출을 미루고 있었고, 2015년 12월에는  '한일 일본군 위안부 합의'가 이루어졌다. 이어 2016년 4~5월, 청와대 외교안보수석실에서는 외교부에 다음과 같은 박근혜 당시 대통령의 지시사항이 전달했다.

"일본과 설립을 합의한 위안부 관련 재단은 6월이면 설립될 예정이고, 6~7월에는 일본에서 약속한 대로 (재단 출연을 위한) 돈을 보낼 전망이다. 그로부터 1~2개월 뒤 의견서를 제출하고, 모든 프로세스를 8월 말까지 끝내라."

임종헌 전 법원행정처 차장 ⓒKBS

그 사이 임종헌 당시 법원행정처 차장은 일본 전범기업들의 소송대리를 맡고 있던 김앤장 측과 비밀리에 연락을 취하고 있었다. 이어 9월 29일 예정된 조태열 당시 외교부 제2차관과의 면담을 앞두고 양승태에게 "이제 외교부에서 의견서를 낼 단계가 된 것 같다"고 말했다.

검찰은 당시 양승태의 다음 발언을 계기로 양승태가 공범임을 확정지은 것으로 보인다. 물론, 양승태는 다음 발언을 한 사실을 인정하지 않을 것으로 예상된다.

"내 임기 내에 결론을 내리기는 쉽지 않겠지만, 강제징용 사건을 전원합의체에 회부하겠다."

이 메시지는 9월 29일 조태열 등 외교부 관계자들에게 전달됐다. 검찰에 따르면, 임종헌은 당시 외교부에 ▲전원합의체 회부 추진 ▲외교부 의견서 전 신호를 받으면 김앤장으로부터 정부의견 요청서를 접수받아 외교부에 그대로 전달하는 방안 ▲외교부 의견서 제출 후 이를 기초로 법원 내부 절차 개시 시도 등 메시지를 전달했다.

전원합의체 소위원회(약칭 '전합 소위')는 양승태 재임 중인 2015년 7월 "전원합의체를 활성화하자"는 취지에서 설립됐다. 위원장은 대법원장이 맡고, 대법관은 소부별 1명씩 총 3명이 위원회에 참여해 전원합의체 회부 여부와 공개변론 사건 선정을 결정한다.

공소사실이 진실이라면, 양승태·임종헌은 재판 관련 업무를 계기로 얻은 정보를 민사소송 피고와 이해관계자에게 유출한 결과가 도출된다.

외교부는 예정대로 11월 29일 의견서를 제출했지만. 전원합의체 회부 시도는 2017년 3월 불거진 '판사 블랙리스트' 파문으로 인해 중단됐다.

위안부 피해자들의 소송 제압 위해 동원하려던 법리 '국가면제'

양승태 재임 당시 대법원은 일본군 위안부 피해자들의 손해배상 청구소송에도 손을 댔다. 피해자들은 2013년 8월 서울중앙지법에 일본 정부를 상대로 손해배상 조정을 신청했다. 하지만 조정은 실패했고, 2016년 1월에는 손해배상 청구소송이 제기돼 현재도 진행 중이다.

임종헌은 "1965년 한일 청구권 협정으로 인해 개인의 청구권은 소멸한다"는 취지의 외교부 입장을 이 사건에도 반영시키기로 결론 내렸다. 이에 따라, 기획조정실 심의관을 통해 위안부 피해자들의 소송과 관련해 다음과 같은 결론을 내리려고 했다.

▲ 피해자들의 손해배상 청구권은 주권 면제·통치행위론·한일 위안부 합의·소멸시효 등 이유가 있으니 인정될 수 없다. 

▲ 대법원에 있어 청와대나 외교부는 국제사법공조·법관 해외공관 및 국제기구 파견 등과 관련해 협조를 얻어야 해서 중요하다.

▲ 그렇기 때문에 각하·기각 판결의 논거와 시나리오별 대응방안이 필요하다.

양승태 전 대법원장 ⓒKBS

이후 2016년 1월 4일 임종헌에게 도착된 보고서 제목은 '위안부 손해배상판결 관련 보고'였다. 주된 내용은 다음과 같다.

▲ 공시송달에 의한 소송 진행이 타당하다. 재판을 처리하는 방향은 재판권 없음을 이유로 한 소송 각하·재판권은 인정하되 통치행위론에 따라 각하·재판권은 인정하되 시효로 인한 소멸을 이유로 기각·재판권도 인정하고 원고들의 청구도 인용 등 5개의 시나리오가 도출된다.

▲ 원고들의 청구를 인용하면 한일관계 재경색·정부와 사법부의 갈등·한국 정부에 대한 국제 신인도 하락 등 부정적 측면이 있다.

▲ 일본은 무대응으로 일관할 가능성이 크지만, 공시송달을 토대로 소송을 계속 진행하는 것이 타당하다. 해외 공시송달에 최소한 소요되는 6개월 동안은 외교적 경로를 통해 조정·화해·소 취하를 시도해야 한다.

▲ 조정·화해·소 취하가 이루어지지 않으면 국제관습법상 국가면제에 의해 재판권 없음을 이유로 각하 판결을 하는 것이 불가피하다.

▲ 이로 인해 악화될 여론에는 "일본 정부에 의한 조직적 반인권적 범죄"라는 결론을 구체적으로 설시해 대응한다.

국가면제(State immunity)는 국제관습법상 인정되는 국가에 인정되는 면책특권이다. 쉽게 말해 특정한 나라는 원칙상 다른 나라의 재판권으로부터 면제되는 권리를 말한다. 

즉, 당시 대법원은 일본군 위안부 피해자 문제를 일본이라는 국가의 조직적 행위로 규정지어 여론의 반발을 최대한 무마하면서, 그 논리에 국제관습법상 논거를 덧붙여 박근혜 정부의 요구를 충족시키는 등 '일타쌍피'를 노리려고 한 것으로 보인다.

만약 '국가면제' 법리를 이용해 청구를 기각했다면, 상당한 논쟁은 불가피했을 것으로 보인다. [대법원 2011. 12. 13., 선고, 2009다16766, 판결](링크 클릭)에서 제시한 국가면제 요건은 ▲외국의 사법적 행위가 주권적 활동에 속할 것 ▲우리의 재판권 행사가 외국의 주권적 활동에 대한 부당한 간섭이 될 우려가 있을 것이었기 때문이다.

그렇기 때문에 "여성을 강제로 동원해 군(軍)의 성노예로 삼는 것이 주권적 활동이냐"는 반박이 전국적으로 이어졌을 것이다.

국제사법재판소 ⓒKBS

하지만 대법원은 바보가 아니다. 나름의 근거를 가지고 '국가면제' 법리를 동원하려고 했기 때문이다. 

이탈리아·그리스 대법원은 제2차 세계대전 중 독일군의 전쟁범죄와 관련해 국가면제를 인정하지 않는 취지의 판결을 했던 바 있다. 이탈리아 대법원의 당시 판단은 일명 '페리니 판결'이라고 한다.

반면, 국제사법재판소(ICJ)는 2012년 4월 판사 15명 중 12명의 의견을 토대로  "인권침해 등을 이유로 국가면제를 박탈하는 국제관습법은 존재하지 않는다"는 판단을 했다.

다만 반박의 논거도 분명히 있다. 우리는 국제사법재판소 당사국이 될 당시 강제관할권은 유보했기 때문에 국제사법재판소의 판결이 절대적인 효력을 갖는 것은 아니다. 

국제사법재판소의 판결 자체도 판결을 강제할 수단이 없어 현실적인 힘을 갖지 못하는 편이다. 따라서 역설적으로 '페리니 판결'을 매개로 한 강력한 반박이 제기될 가능성이 높다.

논거를 '취사선택'할 경우 수반되는 반박의 여지가 곧바로 따라오는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당시 대법원에서 오가던 '국가면제' 법리는 양날의 칼이었던 것이다.

(다음에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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