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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라스트 미션' 그럼에도 '노인의 역할'은 사라지지 않는다[리뷰] 거장은 "내 시간은 얼마 남지 않았다"고 말하지만…
박형준 | 승인 2019.03.18 16:15

※ 이 기사에는 영화 '노인을 위한 나라는 없다' '라스트 미션'의 스포일러가 담겨 있습니다. 

노인을 위한 나라가 없는 것인가, 노인이 세상을 버린 것인가

영화 '라스트 미션' ⓒ워너 브라더스 코리아

코엔 형제가 연출한 2008년 작 '노인을 위한 나라는 없다'의 현명한 노인 보안관 '에드 톰 벨(토미 리 존스 분)은 안톤 쉬거(하비에르 바르뎀 분)의 각종 정신 나간 행각을 돌아보면서, "세상이 너무 흉악해져서 늙은 보안관은 할 수 있는 것이 없다"는 취지로 회고했다.

노인은 인생 경험만큼의 관록을 가지고 있고, 그 관록을 토대로 젊은이들의 길잡이가 돼 줄 수 있다.

하지만 세상은 너무 빠르게 변해서 과거의 윤리 기준과 상식은 더 이상 통하지 않게 됐고, 그 여파로 이따금씩 안톤 쉬거 같은 괴물이 나오기도 한다.

하지만 경험은 만능통치약이 아니다. 사람이 나이를 먹으면서 완고해지는 결정적인 이유는 바로 그 경험이다. 경험은 사고의 폭을 좁히면서 변화에 대한 적응을 방해한다. 

아울러 경험은 때때로 사람에게 치명적인 상처를 준다. 그 치명적인 상처는 사람의 행동 폭을 좁힌다. 우리는 그것을 트라우마(psychological trauma)라고 한다.

클린트 이스트우드는 2004년 걸작 '밀리언 달러 베이비'에서 완고한 노인이 변하는 과정을 이야기했던 바 있다. 

완고한 노인에게 "여성이 권투를 한다"는 것은 웃기지도 않는 일이었다. 게다가 그 노인은 신중함이라는 미덕을 버린 세상 인심으로부터 상처를 받은 바 있다. 하지만 그 노인을 변화시킨 것은 열정이었고, 뜨거운 인간 관계였다.

클린트 이스트우드는 만 88세의 나이로 감독 겸 주연을 맡아 14일 국내 개봉된 2018년 작 '라스트 미션(원제: The Mule)'에서 다시 노인의 완고함과 변화를 이야기했다. 

'라스트 미션'의 주인공이자 6·25전쟁 참전용사인 얼 스톤은 "다른 사람들에게는 따뜻하지만 가족은 철저히 외면하는" 전형적인 옛 가부장이다. 남성으로서의 자존심과 평가에는 예민하지만, 가족과의 화합이나 소통은 전혀 고려하지 않는 사람이었던 것이다. 

그리하여 얼 스톤은 백합 박람회 수상 축하행사는 참석하지만, 딸의 결혼식에는 참석하지 않는다. 지독할 정도로 권위적인 가부장이었던 것이다. 에드 톰 벨은 "노인이 할 수 있는 일이 없다"고 한탄했지만, 얼 스톤은 "세상을 버린 노인"이었다.

하지만 세상은 가부장의 권위 따위는 존중하지 않는다. 얼 스톤은 인터넷 판매는 외면하고 오프라인 판매만 고집했던 덕분에 농장 경영에 처참하게 실패한다. 

그리하여 우연히 하게 된 돈벌이는 마약 배달이었다. 80대 나이로 범죄 세계에 입문한 것이다. 실패한 노인이 젊은 세계 중에서도 가장 거칠고 처참한 세계에 발을 디딘 것이다. 

이는 2011년 DEA(미국 마약단속국)에 만 87세의 나이로 체포된 마약운반책 레오 샤프의 실화를 기초로 한 이야기다. 레오 샤프는 실제로 제2차 세계대전 참전용사로서 성공한 원예사업가였다가 노인이 돼 파산했고, 80대의 나이에 최고령 마약운반책으로 활동했던 바 있다.

거장은 "내 시간은 얼마 남지 않았다"고 말하지만…

역설적으로 마약 배달은 얼 스톤이 '노인의 지혜와 여유'를 시전 하는 가장 확실한 무대가 되고 말았다. 얼 스톤은 노인의 임기응변을 곳곳에서 발휘하면서, 최고의 마약 배달꾼 '할배'로 통하기 시작했다. 

경험이 짧아 긴장을 놓지 못하는 마약 조직의 젊은 배달원들은 얼 스톤의 임기응변을 이해하지 못한다. 하지만 '노인의 지혜와 여유'를 통찰한 조직의 두목은 얼 스톤을 대단히 신뢰하면서 "예측할 수 없으니 문제가 없다"는 칭찬과 함께 얼 스톤을 최고로 예우했다.

영화 '라스트 미션'의 한 장면 ⓒ워너 브라더스 코리아

얼 스톤은 마약 배달로 번 돈을 다시 외부 활동에 사용한다. "공익에 기여해야 한다"는 보수적 가치관과 자신의 공익적 활동에 대한 다른 사람들의 인정은 얼 스톤이 살아가는 이유였고, 삶의 활력소였던 것이다. 

그 공익적 활동을 위한 자금 출처가 심각한 범죄라는 점은 대단한 아이러니일 수 밖에 없다. 이와 같은 세상의 아이러니 또한 의미심장하게 다가온다.

역설적으로 마약 배달은 얼 스톤이 다시 세상과 소통하게 된 계기가 됐다. 본의 여하를 떠나 젊은이들에게 '노인의 지혜와 여유'를 전달하게 됐고, 평생 고생만 시킨 아내의 죽음을 거쳐 가족과 화해하는 계기가 됐기 때문이다. 

이렇게 해서 나이 90세를 앞둔 클린트 이스트우드는 자신의 회한과 아쉬움을 회고했다. 얼 스톤의 원만치 못한 가족관계는 마치 스스로의 이야기를 투영시킨 것처럼 느껴지기 때문이다. 

그 느낌의 결정적인 지점은 얼 스톤을 증오하는 딸을 연기할 배우로 자신의 친딸 앨리슨 이스트우드를 출연시킨 것이다. 대개의 할리우드 관계자들이 그렇듯이 클린트 이스트우드는 실제로 여성 편력이 화려한 편이었다.

얼 스톤은 체포된 이후 재판에서 자신의 모든 혐의를 순순히 인정한다. 이는 클린트 이스트우드 특유의 '공감할 수 있는 보수'를 상징하는 장면이다. 보수의 핵심 논거는 '자율과 책임'이기 때문이다.

'라스트 미션' 최고의 장면은 바로 결말에 있다. 교도소에서도 원예 활동에 종사하던 얼 스톤은 꽃밭 사이에 터진 넒은 길을 가로질러 오른쪽에서 왼쪽으로 사라진다. 

젊은 시절의 그는 세르지오 레오네 감독과 함께 하면서 최고의 남성이자 무법자로 통했다. 그리하여 자신을 체포하는 마약단속국 요원 콜린 베이츠 역에 우리 시대 최고의 스타 중 1명인 브래들리 쿠퍼를 출연시킨 것이 여운을 주기도 한다.

얼 스톤은 우연히 조우했던 콜린 베이츠에게 자신의 실패한 가정사를 토대로 "나를 닮지 말라"고 충고한다. 전설이 현재의 톱스타에게 전달하는 진지하고도 현실적인 조언이기 때문에 의미심장하다. 

참고로, 브래들리 쿠퍼는 10여 년 전만 해도 할리우드 스타의 전형적인 여성편력을 보인 바 있지만, 현재는 알콩달콩 가정을 일구면서 살고 있다.

영화 '라스트 미션'의 한 장면 ⓒ워너 브라더스 코리아

얼 스톤이 가로지른 그 길은 클린트 이스트우드가 지나온 길이었다. 그리하여 얼 스톤이 화면 왼쪽에서 사라지는 순간, 우리는 절로 "고령의 클린트 이스트우드가 '자신에게 남은 시간이 얼마 남지 않았다'는 사실을 말하고 있다"는 생각을 하게 된다.

코엔 형제의 '노인을 위한 나라는 없다'가 노인이 감당하기에는 너무 삭막해진 세상을 이야기했다면, 클린트 이스트우드는 '라스트 미션'을 통해 "그럼에도 불구하고 노인의 역할은 사라지지 않는다"고 말한다.

참고로, 일본의 거장 구로사와 아키라가 만 83세였던 1993년 연출한 유작의 제목은 '마다다요(まあだだよ)'였다. '마다다요'는 "아직이다" "(숨바꼭질에서) 아직 안 숨었다"는 의미를 가지고 있다. 구로사와 아키라는 만 88세의 나이로 죽기 전까지 차기작의 각본을 집필하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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