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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자를 무엇을 위해 사는가, '기레기'의 딜레마[리뷰] 진실의 무게를 이야기하는 <특종 량첸살인기>
박형준 | 승인 2015.10.23 06:00

<네트워크>와 신탁통치 오보 사건

시드니 루멧 감독의 1976년작 <네트워크>는 시청률 지상주의에 인간성이 매몰된 미디어 종사자들을 풍자했다. 시청률이 떨어져 해고 외기에 몰린 앵커는 고별 생방송에서 "자살하겠다"고 선언한다. 이후 해고는 취소됐고 사회 곳곳의 위선을 고발하는 독설가 컨셉으로 가까스로 방송을 이어간다. 하지만 시청률에 의한 스트레스가 극에 달하고 다시 시청률이 낮아지자 PD는 해괴한 발상으로 앵커를 더욱 궁지로 몰아간다는 내용을 가지고 있다.

KBS2 <개그콘서트> 코너 '시청률의 제왕'도 시청률을 온도계 막대처럼 처리하는 가운데 드라마 제작자가 실시간 시청률을 높이기 위해 막장 설정을 총동원한다는 내용이었다. 수많은 방송과 언론의 틈바구니에서 국민의 주목을 받고 살아남기 위한 미디어의 현실을 꼬집는 내용들이었다. 

<특종 량첸살인기>, 제작 - 우주필름

22일 개봉한 <특종 량첸살인기>도 이런 비판의 맥을 이어간다. 우리 사회에서 기자는 과연 누구일까? 기자는 원래 일상에서 국민이 알아야 할 정보를 제공하고, 또한 권력과 자본의 비리를 파헤치고 숨겨진 진실을 찾아 보도하는 것을 임무로 삼는다. 하지만 어느덧 우리 사회에서 기자들을 비하하는 명칭은 '기레기(기자+쓰레기)'가 됐다. 

그들을 기레기로 만드는 것은 많은 언론이 존재하는 가운데 살아남기 위한 움직임으로부터 비롯되는 것일지도 모른다. 포털의 순간 검색어와 여성 연예인의 지나친 노출에 집착한다. 이것을 소형 매체의 문제로만 치부할지도 모르지만, 이 문제는 규모를 가릴 필요가 없는 총체적 현실이다. 

그런가 하면 공명심이 냉정한 판단을 가로막아 설익은 취재나 다른 여타 여건에 의해 섣부른 보도를 해 오보를 내는 경우도 있다.

언론의 오보는 우리 현대사를 관통하는 일까지 있었다. 해방 직후 한반도 문제를 다루는 미국·소련·중화민국의 모스크바 3상 회담이 채 끝나기도 전에 한 신문이 "소련은 신탁통치에 찬성하고 미국은 반대한다"는 오보를 내면서 좌우 이념 대립에 따른 찬탁과 반탁의 운동이 거세게 일어난 것이다. 

사실 모스크바 3상회의 관련 논란이 된 신탁통치안은 미국에서 만든 정책이었으며, 심지어 미국은 50년 동안 신탁통치해야 한다고 주장했을 정도. 통치 주체에 대한 결과도 3상회의에서는 임시정부 수립으로 결론내렸다. 신탁통치가 아니라 임시정부 수립이 회담의 요점이었다. 현대사 연구자들은 소련 견제 목적과 신탁통치에 대한 조선인의 반감에 따른 정치적 목적을 위한 미군정이 주도한 의도적 오보라는 견해가 많다고 한다.

이렇듯 '신탁통치 오보 사건'을 통해 알 수 있듯이, 오보는 경우에 따라 세상에 더 큰 파문을 던진다. 언론사 조직을 위기로 모는 경우도 있다. 세상의 지탄은 또 어떻게 감당할 것인가. 

<특종 량첸살인기>는 의도치 않은 오보를 낸 방송기자를 주인공으로 내세워 언론의 현실을 다룬다. 기자의 의도치 않은 오보가 세상에 큰 오해를 불러 일으켰을 때, 어떤 심정을 느낄지 간접적으로 느낄 수 있을 것이다.

오보대로 살인사건이 벌어진다면?

방송기자 허무혁(조정석 분)은 이혼과 해고 위기에 몰려 있다. 그러다가 가볍게 생각했던 연쇄 살인사건 관련 제보를 우연히 기억해내 제보의 현장으로 간다. 이후 그는 연쇄살인범의 친필 메모라고 믿은 종이와 그외 보고 들은 것을 방송에 내보낸다. 대특종이었다. 하지만 그 메모는 영화 속 등장하는 가상의 소설 <량첸살인기>에 나왔던 구절에 불과했다. 

그는 보도국장(이미숙 분)과 이사(김의성 분-<육룡이 나르샤>의 정몽주)에게 해명을 하려 하지만, 그들은 그가 말할 기회를 막으며 후속 보도를 밀어붙인다. 경찰은 취재 과정을 밝히라며 압박을 가한다. 이런 상황에서 그가 오보를 낼 때마다 그에 따른 실제 살인사건이 일어나고 만다.

<특종 량첸살인기>의 한 장면, 제작 - 우주필름

오보는 기자 개인에게는 큰 수치심을 준다. 사람은 누구나 실수를 할 수 있다. 하지만 보도는 되돌릴 수 없다. 그리고 기자는 언제나 현장에서 매체를 대표한다. 개인의 실수는 결국 조직의 실수가 된다. 조직은 실수를 인정하길 원치 않는다. 그래서 오보는 엄청난 압박감을 준다.

오보대로 살인사건이 발생한다는 현실은 기자에게는 더 큰 중압감을 줄 수 밖에 없다. 기자는 어디까지나 이미 일어난 현실을 보도하는 사람이지, 현실을 만드는 사람이 아니기 때문이다. 

작품 속 허무혁은 끊임없이 괴로워한다. 적어도 '기레기'는 아니다. 괴로워하면서도 보도국장의 압박에 따를 수 밖에 없었다. 사태가 걷잡을 수 없이 커지는 중요한 이유 중 하나는 그가 양심의 토로를 할 기회를 막아버리고 시청률과 방송사의 위상 제고를 위해 밀어붙이는 보도국장에 있다. 픽션을 통해 현실을 그려내고 있다.

작품 속에서 잘 드러나는 것은 기자의 현실이다. 언론계는 어떤 분야든 대개 그렇듯이 넓은 것 같으면서도 좁다. 그는 해고 위기에서 이직을 고민하지만 그도 모르는 사이에 그에 대한 평판과 소문이 쫙 퍼져서 그것도 쉽지 않다. 언론사들이 본질적으로 처한 재정 위기도 은연중에 드러나 처연하기까지 하다.

<특종 량첸살인기>의 한 장면, 제작 - 우주필름

그런가 하면 영화는, 경찰과 기자가 어떤 관계를 맺고 있는지 나름 현장감 있게 묘사하려 애쓴다. 수습기자가 돼서 처음 만나는 취재원은 다름 아닌 경찰이다. 속칭 '사쓰마와리'라고 하는 경찰서 돌기를 시키는 이유일 것이다. 그만큼 기자와 경찰은 서로를 경계하면서도 이용하고 붙어 지낼 수 밖에 없는 사이이다. 사건 현장에서 밀고 들어가려는 기자와 막으려는 경찰의 관계는 그를 상징하는 장면이다.

한편 관객이 유심히 봐야 할 것 중 하나는 허무혁이 해고에 처하는 이유이다. 비중있게 묘사되는 장면은 아니지만, 언론이 광고주와 진실 보도의 갈림길에서 언제나 처하는 딜레마를 잘 보여준다. 언론사도 돈을 벌어야 한다. 기자들도 월급을 받아야 살고, 취재비용이 필요하다. 하지만 소비자가 비용을 지불하는 것이 아니라, 광고주가 비용을 지불하는 기묘한 시스템이다. 소비자가 원하는 것은 진실이지만, 광고주가 요구하는 것은 감춰주는 것이다. 이 딜레마는 영원할 것이다.

진실을 감당할 수 있는가

<특종 량첸살인기>는 기자들의 세계를 빌려 관객에게 묻는다. 

"당신은 진실을 감당할 수 있는가?"

진실을 감당한다는 것은 자기 고백이며 자기 반성이다. 사람은 완벽하지 않다. 실수할 수도 있고, 잘못할 수도 있다. 그래서 고백해야 하고 반성해야 한다. 쉽지 않다. 수치심 때문이며, 후폭풍이 있기 때문이다. 

<특종 량첸살인기>의 한 장면, 제작 - 우주필름

게다가 사람은 사회적 동물이다. 자신의 실수가 때로는 소속 조직 전체의 문제로 번질 때가 있다. 양심과 생존의 경계에 설 때가 많다는 것이다. 진실을 감당하고자 할 때 큰 용기가 필요한 가장 결정적 이유라고 할 수 있다. 혼자서 살 수 있는 사람은 아무도 없다는 것은 때로는 개인에게 엄청난 괴로움을 준다.

영화는 허무혁 개인의 삶과, 허무혁이 속한 조직 전체를 놓고 진실의 무게를 전해준다. 남김없이 밝히고 양심의 자유를 찾는 것과 묻어두고 그냥 그렇게 살아가는 것은 우리가 일상에서 언제나 마주하는 갈림길이다. 밝혀야 할까, 아니면 묻어야 할까. 인류의 영원한 숙제이다.

박형준  ctzxpp@g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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