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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더 폰> 나는 존재한다, 현실에서. 아니, 미래에서?[리뷰] 장자의 호접지몽과 데카르트 철학, <더 폰>의 시간여행
박형준 | 승인 2015.10.23 18:00

아내를 잃은 남자들

크리스토퍼 놀란 감독의 <메멘토>는 아내를 잃은 충격에 10분 이상 기억을 지속하지 못하는 남자의 이야기를 담았다. 10분이라는 시간 제한은 극중 큰 역할을 하는 장치이다. 영화는 시간을 거꾸로 거슬러올라간다. 그러면서 남자가 왜 아내를 잃었는지를 서서히 보여준다. 관객에게는 고도의 집중력을 요한다. 집중력을 잃지 않고 영화에서 거꾸로 보여주는 장면들을 연결지으면 큰 반전이 기다리고 있다.

유명 미국 드라마 <멘탈리스트>도 아내와 딸을 잃은 남자의 이야기이다. 범인은 그 유명한 '레드존'이다. 주인공 패트릭 제인은 레드존을 잡기 위해 캘리포니아 수사국의 수사 자문으로 들어가 각종 사건을 해결하면서 조금씩 레드존을 향해 접근한다. 아내와 딸의 시신, 그리고 레드존 특유의 미소 마크는 그에게 트라우마로 남아있다.

김봉주 감독의 장편 데뷔작 <더 폰>도 아내를 잃은 남자의 이야기를 담았다. 아내의 죽음 이후 큰 미스터리에 휘말린 남편이 그 진실을 추적해가는 과정은 앞서 언급한 <메멘토>나 <멘탈리스트>와 유사하다. 하지만 거기에 머물렀다면 이 영화는 그저 아류작에 머물렀을 것이다. 

<더 폰>에서 변호사 고동호(손현주 분)는 아내 조연수(엄지원 분)가 괴한으로부터 살해당한 지 딱 1년이 지난 2015년 5월 16일에 이상한 전화를 받는다. 살해당한 아내와 똑같은 목소리를 가진 여자로부터 전화를 받은 것이다. 아무리 들어도 목소리의 주인공은 아내였다. 아내는 자신이 전화를 거는 날짜를 2014년 5월 16일이라고 설명한다. 1년 전 아내가 살해당한 그날, 아내로부터 걸려온 전화였다.

<더 폰>의 한 장면, 미스터로맨스 제작

플래시백 편집의 극대화

영화는 1년의 시차를 두고 과거와 현재를 교차한다. 과거는 단순히 과거가 아니다. 과거도 살아 움직인다. 현실에서 고동호가 시도한 변화는 과거에도 영향을 미치고 있다. 고동호가 직접 과거로 날아가 사건 당일의 움직임을 바꿀 수는 없다. 하지만 현실의 고동호가 과거의 아내에게 주문하는 바에 따라 아내가 움직이면, 현실의 고동호가 알고 있던 진상이 조금씩 바뀌는 방식으로 영화가 진행된다.

이렇게 되면, 이른바 '시간 역설(Temporal Paradox)'이 일어난다. 과거가 바뀌면 현실도 바뀌어야 한다. <더 폰>은 그에 충실한 묘사를 한다. 이로써 고동호는 자신이 전혀 상상치 못했던 '뒤바뀐 현실'을 맞이한다. 고동호는 여태까지 과거를 바꾸려 애썼지만, 현재의 위험도 헤처나가야 하는 상황에 빠진다. 

힘을 가지면 그 댓가를 치뤄야 한다. 고동호는 우연한 기회에 과거와 연결됨으로써, 과거를 바꾸려 애쓴다. 이것은 사람이 건드려서는 안되는 금기이다. 금기를 건드린 댓가는 혹독한 법이다.

내용으로부터 알 수 있듯이 <더 폰>은 플래시백 편집이 필수이다. 과거의 아내와 현재의 남편은 끊임없이 소통해야 하기 때문이다. 플래시백 편집으로써, 과거의 아내라는 비현실적 영역도 관객에게 현실감을 제공한다. 과거의 아내도 위험한 상황에서 미래의 남편과 소통을 함으로써 스스로의 위기를 헤쳐나가려 한다. 믿을 수 없는 상황에 부부는 서로를 믿는다. 그래야 부부이다.

<더 폰>의 한 장면, 미스터로맨스 제작

수천 년 넘게 매력적인 탐구 주제 '호접지몽'

장자의 호접지몽(胡蝶之夢)을 소화했던 가장 유명한 영화는 <매트릭스> 시리즈였다. 장자는 스스로 나비가 되는 꿈을 꾼 후 "내가 나비의 꿈을 꾼 것인지, 나비가 내가 된 꿈을 꿨는지" 혼란스러워 했다. 서양철학에서는 데카르트가 이를 두고 존재론과 인식론으로 소화했다. 

앞서 이야기했듯이, <더 폰>은 과거에도 현장감을 부여하며 과거와 현실의 경계를 모호하게 처리했다. 2015년의 고동호는 2015년의 고동호가 보면 현실이다. 하지만 2014년의 아내가 보면 미래이다. 마찬가지로 2014년의 아내는 2015년의 고동호가 보면 과거이다. 하지만 2014년의 아내에게는 급박한 현실이다. 과거·현재·미래가 모두 섞였다. 

데카르트는 "내가 존재한다는 것을 어떻게 알 수 있느냐"고 물었다. 이어 감각의 문제를 제기했다. 지식을 안다는 것은 '인식'이라는 감각을 필요로 한다는 것이다. 1년 전 죽은 아내와 통화한다는 고동호의 현실은, 제3자가 보면 황당한 궤변일 뿐이다. 직접 인식한 적이 없기 때문이다. 하지만 고동호는 스스로 경험하고 느꼈다. 스스로 존재한다는 것 뿐만 아니라 상황 판단 역시 인식을 거쳐야 한다. 이렇듯 <더 폰>은 나름대로 인류의 오랜 철학적 기원에 기반을 두고 내용을 전개했다.

그런 의미에서, <더 폰>의 결말을 관객마다 다르게 받아들일 여지가 크다. 누군가는 황당하다고 할 것이고, 누군가는 헷갈린다고 할 것이다. 반응은 각자 차이가 있겠지만, 분명한 것은 이 영화는 시간의 흐름이 무시됐고 나름 금기를 건드리려 한다는 것이다. 이것을 이해하기 위해서는 장자와 데카르트를 조금은 알면 좋다.

배성우의 인상적인 악역 연기

작중 악역으로 등장하는 배성우는 같은 시기에 개봉한 <량첸 특종살인기>에도 출연했다. 하지만 보다 몰입해서 연기했을 작품은 <더 폰>일 것이다. 비현실적 허무맹랑한 소리로 보일 수도 있는 <더 폰>의 내용은 현장감 있는 연기가 중요했다. 주인공 손현주·엄지원의 연기는 물론이고, 이들이 맞서야 하는 악역의 연기도 반드시 리얼해야 했다.

<더 폰>의 한 장면, 미스터로맨스 제작

배성우의 연기는 <샤이닝>의 잭 니콜슨의 흔적이 보인다. 배성우는 <오피스>에서도 강렬한 연기를 선보인 바 있다. 이때도 잭 니콜슨을 연상시킨다는 평가가 많았다. 배성우의 악역 연기야말로 <더 폰>의 진수이다. 그의 연기가 아니었다면, 이 영화가 반드시 갖춰야 할 현장감과 주인공들이 느꼈을 위험을 관객에게 전달하기 어려웠을지도 모른다. 2007년 방영된 KBS 드라마 <한성별곡-正>의 살주계 2인자 도술 역 이후로 그의 연기는 수많은 작품에서 소금으로 자리잡았다. <더 폰>에서도 그 진가를 보여줄 것이다.

가족은 '가족끼리'라서 서로에게 무심할 수 있다. <더 폰>은 그 무심함을 뒤늦게 후회하려 해봤자 소용없다는 지극히 당연하고도 기억하기 어려운 이야기를 전한다. <더 폰>은 그래서 존재론으로부터 영화를 시작했을지도 모르겠다. 당신은 어디에서 왔는가, 당신은 누구인가, 그 답은 가족으로부터 찾을 수 있다. 

박형준  ctzxpp@g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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