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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시절, 그는 세계무역센터 하늘을 걷고 있었다[리뷰] <하늘을 걷는 남자> 추억은 트라우마를 이길 수 없었다
박형준 | 승인 2015.10.29 06:00

암울했던 그때, 그 남자가 하늘을 걷고 있었다

<하늘을 걷는 남자>, UPI 코리아 수입·배급

1970년대 미국은 혼란스러웠다. 통킹만 사건을 과장해서 참전한 베트남 전쟁에는 수많은 청년들과 예산을 갈아넣었지만, 승산은 보이지 않았다. 전쟁터에서는 상관 살해와 마약이 난무했고, 이후 그 청년들이 겪는 PTSD(외상 후 스트레스)는 미국 사회의 큰 문제가 됐다.

그런가 하면 리처드 닉슨 대통령은 워터게이트 사건에서 은폐 시도를 하고 "나는 사기꾼이 아니"라고 항변하다가 결국 사임을 해야 했다. 암울한 시기였다.

1970년대 할리우드도 이런 사회적 경향을 담았다. <택시 드라이버> <모두가 대통령의 사람들> <네트워크> 등 당대 명작들은 모두 사회 문제를 비판적으로 담았다. 이런 경향은 실베스타 스텔론 주연의 <록키>가 흥행에 성공하기까지 지속적으로 이어졌다.

1974년, 뉴욕에 도착한 무명의 곡예사 '필리페 페팃(조셉 고든-레빈 분)'은 세계무역센터 쌍둥이 빌딩을 바라본다. 어린 시절부터 줄타기에 매진해왔던 그는 터무니 없는 꿈을 꾸고 있었다. 쌍둥이 빌딩 꼭대기에서, 그 간격인 42.67m 거리의 허공에 줄을 매달아 그 줄을 건너고 공연을 하겠다는 꿈이었다. 

1974년 8월 7일 아침, 뉴욕 세계무역센터 옥상에 로프를 매달아 건너는 필리페 페팃을 보도하는 <경향신문> 1974년 8월 8일자 신문
1980년 스위스 이소르노 강 90m 상공 180m 거리를 걷는 필리페 페팃을 보도한 <동아일보> 1980년 8월 7일자 신문

기성체제에 대한 젊은이다운 반기를 들다

그런데 그것을 위해서는 혼자서 할 수 있는 일을 없었다. 곡예의 비법을 가르쳐 줄 스승이 있어야 했다. 줄을 매달기 위해 도와줘야 할 조력자들도 있어야 했다. 출입이 통제되는 쌍둥이 빌딩 공사현장에서 무사히 옥상까지 올라갈 수 있게끔 도와주는 조력자도 있어야 했다. 사진을 찍어야 할 사람도 있었다. 이들 모두가 합쳐 장비도 옥상까지 들어올려줘야 했다.

그래서 필리페에게도 조력자들이 생긴다. 주목해야 할 것은 필리페의 터무니 없는 꿈을 들은 이들은 처음에는 황당해하다가 적극적으로 돕는다. 말은 안하지만, 시대가 시대인만큼 색다른 일에 반색하며 돕는 그들에게서 당시 미국 사회에서 젊은이들이 느꼈을 암울함이 느껴진다.

<하늘을 걷는 남자>의 한 장면, UPI 코리아 수입·배급

왜냐하면, 미국 자본주의의 새로운 상징이 될 세계무역센터는 한편으로 기성세대의 우뚝선 상징이었기 때문이다. 그런 분위기 속에서 대통령은 "나는 사기꾼이 아니"라고 했지만 결국 은폐 행각이 발각됐고, 징집된 젊은이들은 베트남에서 속절없이 죽거나 마약에 빠지던 암울함이 곳곳에 자리잡고 있었다. 우뚝선 기성세대의 상징에 젊은이들이 숨어 들어가, 터무니없는 꿈의 실현을 돕는 것으로 "나는 살아있다"는 것을 느껴야 할 정도의 암울함이었다는 것이다. 

하지만, 그 어떤 시대든 젊은이는 기성세대에 저항한다. 젊은 시절, 기성세대에 대한 반감과 세상에 대한 저항을 느껴보지 않았다면, 오히려 이상하다. 필리페의 꿈은 터무니 없었지만, 한편으로 인생을 걸어야 하는 패기와 꿈의 실현을 위한 끝 없는 연습이 있었다. 실정법을 어겼고, 목숨을 담보로 하는 위험이 있었겠지만, 그 건강한 패기는 인정해야 했을 것이다.

아직 굳건한 미국의 9.11 트라우마

2015년 10월 21일은, <빽 투 더 퓨처>의 주인공 '마티(마이클 J.폭스 분)'이 1985년에서 날아온 날이었다. 그래서 연출자인 로버트 저메키스 감독도 잠시 한국에서 주목을 받았다. 

그는 <하늘을 걷는 남자>에서 쌍둥이 빌딩을 향해 따뜻한 시선을 멈추지 않는다. 쌍둥이 빌딩은 우뚝 선 자본주의의 상징이었지만, 이제는 노년이 된 당시의 젊은 시대에는 사라진 추억의 상징이었다. 그리고 영화 속 젊은이들에게는 꿈의 실현과 그것을 돕기 위해 열정을 불태웠던 현장이었다. 쌍둥이 빌딩을 매만지고 바라보는 카메라의 시선은 아련했다. 

<하늘을 걷는 남자>의 한 장면, UPI 코리아 수입·배급

하지만 북미에서의 흥행은 의외로 부진했다고 한다. 북미에서는 9월 30일에 개봉했는데, 첫주에는 156만여 달러를 벌어 박스오피스 11위에 랭크됐고, 북미 전역에 확대 개봉한 2주차에서는 주말 약 372만 달러를 벌어 박스오피스 7위를 기록했다. 

이와 같은 흥행 부진은, 로버트 저메키스 감독의 생각과는 달리 사라진 쌍둥이 빌딩은 오히려 미국인의 굳건한 9.11 트라우마로 작용하기 때문일 수도 있다. 쌍둥이 빌딩이 있던 자리인 '그라운드 제로(Ground Zero)'에서는 매년 9월 11일이면, '트리뷰트 인 라이트(Tribute in light)'라는 서치라이트 설비가 조명을 밝혀 희생자를 추모한다. 9.11 테러를 상징하는 미국의 문구도 "Never forget"이다. 

당시에는 20대 청년이었을 로버트 저메키스 감독은 이제 60대 노장 영화 감독이 돼 쌍둥이 빌딩에 대한 추억과 회상, 그리움을 담았다. 만 14년이 지난 9.11 테러의 트라우마로부터 조심스레 벗어나려는 의미에서, 이제는 아련한 추억이 된 옛 이야기를 꺼냈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미국 사회는 생각보다 부진한 영화 흥행의 부진으로 아직은 마음의 준비가 안됐음을 보여줬다. 

다소 뜬금없는 이야기지만, 우리도 최근 남북 이산가족 상봉을 지켜본 바 있다. 6.25 전쟁이 휴전된지 만 62년이 지났지만, 60여 년만에 만난 이산가족의 상봉은 그 상처가 여전함을 우리에게도 전한 바 있다.

전쟁과 테러는 많은 사람들의 가슴을 갈가리 찢고 지울 수 없는 상처를 남겨놓는다. 밝은 기억을 꺼내는 것으로는 그 상처가 쉽게 아물지 않는다는 것을 보여줬다. 그 많은 상처와 원한, 과연 무엇으로 치유할 수 있을까. 한 남자의 패기 넘치는 도전이 담긴 추억담은 가슴 한 구석에 씁쓸함을 남겨놓는다.

관련 다큐멘터리 <맨 온 와이어>, 영화사 진진 수입·배급

참고로 오늘 필리페 페팃의 이야기가 담긴 2008년 제작 다큐멘터리 <맨 온 와이어>도 국내 개봉을 한다. 서울 종로 씨네코드 선재에서 11시 30분 단관 개봉이 예정돼 있다.

박형준  ctzxpp@g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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