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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파이 브릿지> 신뢰와 원칙은 의심과 공포를 앞선다[리뷰] 영화 <스파이 브릿지>가 이념대립에 바쁜 대한민국에 던지는 질문들
박형준 | 승인 2015.11.06 18:00

냉전, 마음 속에 '의심'이라는 얼음을 채워넣다

영화 <스파이 브릿지>, 수입 및 배급 - (주)이십세기폭스코리아

1957년, '매카시즘'을 주도한 조지프 매카시 상원의원은 정치적 영향력을 상실한 채 지병으로 사망했다.

하지만 존 에드거 후버는 여전히 FBI 국장이었다. 해리 S. 트루먼 대통령은 그의 지나친 영향력을 감소시키기 위해 정보 분야를 국내와 해외로 나누어 해외 첩보 분야는 CIA를 창설해 맡겼다.

그렇다고 후버 국장의 영향력은 사라지지 않았다. 공산주의자 색출을 위한 의심 채워넣기는 지속됐다.

소련에서는 이오시프 스탈린이 죽고 니키타 흐루쇼프가 공산당 서기장이 됐다.

이 시점에서, 흐루쇼프는 한창 스탈린 격하운동을 진행하며 스탈린을 '천하의 악당'이라고 규정해 소련 사회에 충격을 주고 있었다. 하지만 미국과 양대 초강대국이며, 공산주의 진영의 지도국이라는 소련의 위치까지 잊지는 않있다. 흐루쇼프는 로켓 기술을 발전시켜 20분 안에 미국에 핵공격을 가할 수 있는 로켓 개발을 추진하고 있었다.

윈스턴 처칠이 일찍이 규정했던 '냉전'의 현실이었다. 알래스카 바다 건너에 미국에 20분 안에 핵을 날릴 수 있는 거대 국가가 있다는 것은 미국인의 가슴 속에 공포를 심었다. 공포는 의심과 적대감을 부른다. 언제든 내가 죽거나 다칠 수 있기 때문에 적은 반드시 색출해 죽여야 했다. 하지만 한 길 사람 속은 아무도 몰라서 누가 적인지 알 수 없었다. 그러니 의심이 싹튼다. 

적을 처치해야 한다는 강박관념은 "목적을 위해서라면 수단이야 어떻든 상관없다"는 잘못된 생각을 키운다. 냉전을 치뤘던 우리는 물론, 미국에서도 마찬가지였다.

1957년의 미국은 소련 스파이 루돌프 아벨(마크 라이런스 분)을 체포했다. 그는 미국으로 전향하라는 회유를 거부하고 재판을 받게 됐다. 하지만 '소련 스파이'이며, '공산주의자'인 그에게 재판의 엄정함은 통하지 않았다. 무죄추정의 원칙, 위법수집증거 배제의 원칙(위법하게 수집한 증거는 재판에서 배제해야 한다는 형법의 대원칙) 따위는 장식이었다. 재판은 그를 죽이기 위한 요식행위에 불과했다.

영화 <스파이 브릿지>의 한 장면, 수입 및 배급 - (주)이십세기폭스코리아

변호사 제임스 도노번(톰 행크스 분)은 그의 변호인이었다. 그는 사람들의 차가운 시선과 정체불명의 테러에도 굴하지 않았다. 아벨에 대한 사형 선고를 애써 막아낸 그는 미국 정부의 비공식 요청을 받게 된다. 미국과 소련의 사람 맞교환에 관한 것이었다. 미국은 소련에 아벨을 넘기고, 소련은 미국에 소련 영공에서 전투기가 추락해 붙잡힌 프랜시스 게리 파워스(오스틴 스토웰 분)을 넘긴다는 것이었다.

도노번은 여기서 한 명 더 구하고자 한다. 동독에서 만난 애인과 아버지를 서독으로 탈출시키려다가 동독 측 베를린 장벽 근처에서 체포된 미국인 학생 프레데릭 프라이어(윌 로저스 분)이었다. 미국은 그에게 아무 관심도 보이지 않았다. 하지만, 도노번은 1명의 카드로 2명을 구하려는 삼각 협상을 시도한다. 스티븐 스필버그 감독의 27번째 장편 영화  <스파이 브릿지>는 그 이야기를 다룬다.

신뢰와 원칙은 공포와 의심을 이긴다

도노번은 원칙주의자였다. 도노번이 아벨을 변론하면서 주장한 무죄추정의 원칙이나 위법수집증거 배제의 원칙은, 스파이든 악인이든 누구든 가리지 않고 적용돼야 할 원칙이었다. 하지만 의심과 공포에 눈이 가려진 사람들은 그런 것을 개의치 않았다. 두려우니 죽여야 했을 뿐이다.

<스파이 브릿지>는 도노번이 원칙주의자임을 강조한다. 도노번은 아무리 소련 스파이더라도 적법한 절차에 따른 재판을 거쳐야 한다는 소신을 실천한다. 

영화 <스파이 브릿지>, 수입 및 배급 - (주)이십세기폭스코리아

다만, 도노번은 한편으로 유연했다. 상대방과 거칠게 맞서기보다 타협하기를 택한다. 그렇다고 원칙을 버린 것도 아니다. 오히려 원칙을 명분삼아 거기에 정치를 더해 상대방을 보이지 않게 궁지로 몰아갈 뿐이다. 삼각 협상 과정에서는 상대방이 원하는 것이 무엇인지를 통찰해 정치적으로 승화시키는 마술을 보여준다. 그는 타고난 협상가였다.

<스파이 브릿지>는 그가 특출한 전략가라서 어려운 협상을 지속적으로 진행할 수 있었다고 강조하지는 않는다. 신뢰가 필요할 때 신뢰하고, 원칙을 버리지 않았을 뿐이었다. 원칙은 고리타분하게 들리기도 한다. 하지만 꼼수와 계략, 의심과 공포 앞에 원칙은 언제나 강하다. 

이념 대립에 바쁜 대한민국의 슬픈 자화상

<스파이 브릿지>는 우리에게도 슬픈 자화상을 남긴다. 1940년대 이래 한반도에서는 좌우 이념대립의 역사가 끊임없이 이어졌다. 공포와 의심이 끝없이 이어졌다. 제대로 된 재판도 없이 판결 후 8시간 만에 사형을 집행한 사건도 있었다. 

진영을 둘로 나누어 둘 중 하나를 선택하라고 강요하는 풍토는 여전하다. 사람은 언제나 입체적이다. 그리고 주체적으로 자신의 생각을 선택하고 결정할 수 있어야 한다. 하지만 진영 대결은 사람에게 그런 선택권을 주지 않는다. 도노번도 그런 과정을 겪는다. 도노번은 그저 자신이 믿는 법의 원칙을 믿고 실천하려 애썼을 뿐이지만, 집단은 그런 그를 이해하지 않았다. 오히려 시련을 안겨준다.

사람을 둘로 나눠 선택을 윽박지르면 과연 누가 이익을 볼까? 공포와 의심 속에 갇힌 우리가 늘 생각하지 않는 부분이었다. 스티븐 스필버그는 각자의 현실에서 적국에 붙잡힌 세 남자와 그들을 귀환시키려 애쓰는 한 남자의 이야기를 통해, 집단의 광기에 휩쓸리지 않고 신념과 원칙을 지킨 사람들의 이야기를 그렸다. 

영화 <스파이 브릿지>, 수입 및 배급 - (주)이십세기폭스코리아

정치적 이념으로 형성된 집단은 그들 스스로 언제나 옳다고 믿기에 과격한 수단을 쓴다. 보수와 진보 굳이 가릴 필요 없다. 서로 옳다고 악만 쓸 뿐 원칙과 신뢰, 토론은 사라져 버렸다.

이런 가운데 자신의 정체성을 지키고, 스스로 생각하는 원칙을 실천하기란 쉽지 않은 일이다. 우리 중 누가 도노번의 길을 기꺼이 걸을 수 있을까? 어렵다. 어렵기 때문에 도노번과 그 배역을 맡은 톰 행크스가 더욱 크게 느껴진다. <스파이 브릿지> 속 차가운 풍경은 우리의 현실을 보는 것 같아 씁쓸할 뿐이다.

박형준  ctzxpp@g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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