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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07 <스펙터>, 제이슨 본 시리즈에 화답하다[리뷰] 제임스 본드의 과거 찾아가기, <스카이폴>만 아니었다면…
박형준 | 승인 2015.11.12 06:00

페르소나 논 그라타, 제임스 본드

<007 스펙터>, 수입·배급 - UPI 코리아

제임스 본드는 1962년 이래 수많은 나라에서 '깽판'을 치며 수많은 악당을 죽였다. 문제는 악당과 추격 레이스를 벌이는 과정이 너무 눈에 띄고 화려하다는 것이다. 

모름지기 스파이는 우리나라 중앙정보부와 국정원의 원훈에서 알 수 있듯이 "음지에서 일하고", "무명의 헌신"을 한다. 음지이고 무명이어야 한다.

하지만 제임스 본드는 천연덕스레 자신의 본명을 말하고 다니며, 가는 데마다 여성 편력을 추가한다. 그것으로도 모자라 남의 나라에서 악당을 쫓는 것은 좋은데, 지나치게 '깽판'을 친다는 것.

아무리 영국이 UN 안전보장이사회 상임이사국이자 핵 보유국이라고 할지라도 정부 소속 인물이 타국에서 이렇게까지 '깽판'을 치고 다니면 감당하기 힘들다.

뿐만 아니라 '페르소나 논 그라타(persona non grata)'로 지정될 가능성도 있다. 페르소나 논 그라타는 외교적 기피 인물에 대한 낙인찍기이다. 기피인물로 지정해 외교권 특권을 박탈하고 강제추방하거나 입국금지하는 것을 말한다. 

물론, 제임스 본드는 외교관이 아니다. 하지만 현실적으로 정보요원이 외교관 신분으로 타국에 입국하는 경우도 많기 때문에 지정 자체가 불가능하지는 않을 것이고 선제적 고려도 해야 할지도 모른다.

로저 무어 시절 제임스 본드는 제11편 <문레이커>에서 무려 우주 유영을 하기도 했다. 아무 생각없이 오락용으로 즐기기에는 좋을 수도 있지만, 제1편 <살인번호>부터 007 시리즈를 즐겼던 팬이라면, 우주에서 붕붕 떠서 로맨틱을 즐기는 본드의 모습은 참담해 보일 수도 있었다.

큰 환영을 받지는 못했지만, 티모시 달튼의 제임스 본드는 보다 잔혹해지고 인간적 감정에도 집중하는 모습을 보였다. 하지만 흥행이 좋지 못하자, 피어스 브로스넌의 제임스 본드는 다시 지나치게 비현실적인 모습으로 돌아갔다. 

그러다가 다니엘 크레이그에 이르러 다시 현실성을 자각하고 숀 코네리와 조지 라젠비 시절에 볼 수 있었던 격렬한 격투도 아끼지 않는다. 여기에는 007 안티를 표방한 <본 아이덴티티> 등 본 시리즈의 성공도 영향을 줬을 것으로 본다.

<007 스펙터>, 수입·배급 - UPI 코리아

<스카이폴>로 화려한 성공을 거둔 제임스 본드는 007 시리즈 제24편 <스펙터>로 돌아왔다. 007 시리즈 팬이라면 결코 잊을 수 없는 이름이 바로 '스펙터(SPecial Executive for Counter-intelligence, Terrorism, Revenge and Extortion)'와 '블로펠드'이다.

이름부터 알 수 있듯이, 스펙터는 첩보·테러·복수·강탈 등 온갖 범죄는 다 저지르겠다는 의지가 느껴진다. 제임스 본드의 오랜 숙적이자, 전세계적 규모의 범죄 조직이다. 스펙터를 아예 메인타이틀로 내세운 것에서부터 알 수 있듯이 이번에는 끝장내겠다는 의미가 아닌가 한다.

제임스 본드의 과거 파헤치기, 제이슨 본에 대한 답변일까?

본 시리즈의 제임스 본은 임무에 실패한 CIA 요원으로서, 기억상실증에 걸려 자신이 누군지도 기억나지 않는데 각종 암살자들의 위협을 맞아 과거를 거슬러 올라가는 과정에 서 있었다. 이는 007 시리즈에 대한 안티테제였다. 

제임스 본드는 어떻게 보면, 지나치게 여유 있었고 우연에 많은 것을 기대기도 했다. 긴박한 순간에 "본드. 제임스 본드(Name's Bond. James Bond.)" 한마디로 본드걸들과 로맨스를 즐기는 제임스 본드의 모습은 오랜 클리셰이지만, 가끔은 당황스럽기도 하다.

<스펙터>는 한마디로 과거로 거슬러간다. 역시나 해외에서 초대형 '깽판'을 치며 페르소나 논 그라타다운 면모를 선보인 제임스 본드는 50년 넘게 숙적이었던 스펙터를 다시 마주하게 된다. 스펙터의 두목은 언제나 페르시아 고양이를 쓰다듬으며 초대형 회의를 주관하며 세계정복의 음모를 꾸며대는 블로펠드이다. 스펙터가 메인타이틀이라는 것은 결국 블로펠드가 메인타이틀이라는 이야기가 된다.

<스펙터>는 쉽게 말해 정체성 찾아가기를 주된 줄거리를 삼는다. 제임스 본드는 어떤 어린 시절을 보냈으며, 어떻게 해서 스펙터와 악연을 맺게 됐는지, 블로펠드는 왜 제임스 본드에 집착하는지 그 실마리가 엿보일 것이다. 이것은 "나는 도대체 누구냐"고 절규하던 제이슨 본에 대한 화답의 의미가 있는 것은 아닌가 싶은 생각도 든다. 

사실 블로펠드는 로저 무어 시절 제12편 <유어 아이스 온리>에서 죽었던 적이 있다. 제임스 본드가 탑승한 헬기를 추락시켜 죽이려고 했지만, 제임스 본드의 분전에 의해 역으로 자신이 헬기에 잡혀서 추락사했던 것이다.

이것은 숀 코네리가 돌발적으로 출연했던, 워너 브라더스 배급의 007 시리즈 외전 <네버 세이 네버 어게인>의 제작자 케빈 맥클로리가 스펙터 및 블로펠드에 대한 저작권을 가지고 있었기 때문에 시도했던 바였고, 결국 <스펙터>에서 부활하게 된 것이다.

<007 스펙터>, 수입·배급 - UPI 코리아

제임스 본드와 블로펠드는 사실 오랜 인연을 가지고 있었다는 것이 주된 내용이었다. 여기에 인간과 컴퓨터 등 첩보세계의 갈등 등이 덧붙어져 나름 고민하고 고뇌하는 제임스 본드와 MI6를 그리려 노력했다. 다니엘 크레이그다운 격렬한 액션과 맞물려 판단해보면, 숀 코네리 시절의 제임스 본드를 느껴볼 수 있는 장점도 있다. 액션의 궤도 숀 코네리 시절 <위기일발>과 유사한 측면이 있다. 

하지만 전작 <스카이폴>이 엄청난 성공을 거뒀기 때문에 다소간의 역효과도 예상된다. 기대치가 높아졌기 때문이다. 

다니엘 크레이그를 언제까지 볼 수 있을까

다니엘 크레이그는 최초의 금발 제임스 본드였다. 그리고 그의 출연과 함께 시리즈도 좀 더 과거의 격렬한 액션을 소화하던 숀 코네리 시절의 본드로 돌아간 측면도 일부분 있었다. 최초 출연작도 <카지노 로얄>이란 점을 주목해야 한다. 제임스 본드가 처음 살인 면허를 부여받던 시절로 돌아갔던 작품이었기 때문이다. 성장과정을 그린 것이다.

그런 다니엘 크레이그는 <스펙터>를 마지막으로 하차하고 싶어하지만, 아직 확정됐다고 볼 수는 없다. 출연 계약에 따르면, 차기작까지가 그의 계약기간이다. 

여기에 차기작 연출자도 중요하다. <다크 나이트> <인터스텔라> 등으로 유명한 크리스토퍼 놀란이 감독 물망에 오른지 꽤 오래된 상황이다. <스펙터>는 <스카이폴>에 이어 샘 멘데스 감독이 맡았지만, 차기작은 알 수 없는 상황이다. 크리스토퍼 놀란 감독은 주연을 바꿨으면 한다는 견해를 표한 바 있다고 한다.

<007 스펙터>, 수입·배급 - UPI 코리아

<스펙터>가 마지막 작품이든, 차기작까지 하든 다니엘 크레이그의 제임스 본드는 시리즈에 큰 족적을 남겼다. 근본으로 돌아가 다시 격렬한 액션을 소화했으며, 정체성에 대한 탐구를 시작한다든가 하는 보다 현실적인 제임스 본드에 집중했던 시리즈였기 때문이다. 

참고로 <스펙터>의 메인 악역 블로펠드 역은 오스트리아 출신 크리스토프 발츠(Christoph Waltz-영어식 발음 크리스토프 왈츠)가 맡았다. 그의 출중한 연기력은 <스펙터> 특유의 비현실성을 감쇄시키고 감정이입에 충실할 수 있도록 도와준다. 

<스펙터>를 보면, <어나더데이> 이후 사그라드나 싶었던 제임스 본드의 신화는 아직은 끄떡없음을 느끼게 해줄 것이다. <스카이폴>보다 못하다면 어쩔 수 없지만 말이다.

박형준  ctzxpp@g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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