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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가씨', "A를 내세워 B를 많이 참고한다"는 박찬욱의 철학이 우려되는 이유BBC 드라마 '핑거스미스', 미셸 푸코의 철학과 빅토리아 시대의 명암을 담다
박형준 | 승인 2016.05.31 06:00

미셸 푸코의 세계관이 엿보이는 <핑거스미스>

1일 개봉하는 박찬욱 감독의 신작 <아가씨>는 세라 워터스의 소설 <핑거스미스>가 원작이다. 많은 재산을 상속받는 여성을 노리는 사기꾼이 다른 여성을 그 여성에게 접근시켜 마음을 얻은 뒤 재산을 노리는 이야기가 진행된다.

에이슬링 월쉬 감독은 2005년 BBC에서 3부작 드라마로 영상화한 적이 있다. 박 감독도 <아가씨>를 제작하면서 영국을 배경으로 제작하려고 했다가 드라마의 존재를 알고 일제 강점기 배경으로 바꾸었다는 후일담도 있다.

BBC 3부작 드라마 <핑거스미스>와 박찬욱 감독 신작 <아가씨> ⓒ BBC, 모호필름

'핑거스미스(Fingersmith)'는 19세기 영국에서 사용되는 '소매치기'라는 의미를 가진 은어이다. 주인공이자, 귀족 여성 모드 릴리(일레인 캐시디 분)에게 접근하는 수 트린더(샐리 호킨스 분)을 상징하는 은어이다. 

중심 이야기는 수가 막상 모드에게 강한 애정과 동질감을 품으면서 갈등하는 것이지만, 빅토리아 시대의 영국을 묘사하는 것 또한 빼놓을 수 없는 이야기이다. 빅토리아 시대 영국의 뒷골목을 그리고 있다는 역사적 배경도 중요하지만, 중점적으로 묘사되는 소재 중 하나인 정신병원도 빼놓을 수 없다. 

사기꾼 젠틀맨(루퍼트 에반스 분)의 작전은 모드와 결혼한 뒤, 모드를 정신병원에 강제 입원시키고 재산을 빼돌리는 것이었기 때문이다. 멀쩡한 사람을 정신병자로 몰아 강제 입원하는 것은 21세기 대한민국 사회에서도 빈번하게 일어나는 일이다.

<핑거스미스>는 정신병원 묘사에 상당한 비중을 기울인다. 미셸 푸코의 <광기의 역사>를 떠올리게 하는 장면들이다. 미셸 푸코에 따르면, 근대 이성이 규정하는 합리성이 모든 인간들에게 강요되면서, 합리성에서 비켜난 사람들은 광인으로 분류돼 치료의 대상이라는 낙인이 찍혔고, 이를 유지하고 확산시키기 위한 권력적 체계는 바로 정신병원이다. 

수용소나 정신병원에는 광인들과 부랑자·빈민들이 주로 갇힌다. 하지만 권력의 음모로 인해 갇힌 사람들도 많았다. 체계에 길들여지지 않은 사람들은 그렇듯 낙인이 찍힌 채 처벌 아닌 처벌을 받아야 했다. 정신병원에 수용되는 것 자체가 비공식적 처벌로 해석될 개연성이 많기 때문이다.

BBC 3부작 드라마 <핑거스미스>의 한 장면

<핑거스미스>는 그 맥락을 정확하게 묘사한다. 두 여성은 서로에게 강한 애정과 동질감을 느끼지만, 세상은 정형화된 여성상만을 강요했다. 게다가 거기에는 돈에 눈이 먼 자들의 음모가 있었고, 두 여성은 여기에 휩쓸린다. 결국 작동하는 것은 인간의 이기심과 탐욕이었다. 이기심과 탐욕 때문에 순수한 애정은 왜곡되고 미움과 증오로 바뀔 수 있음을 강하게 경고한다.

왜 빅토리아 시대를 주목했을까

<핑거스미스>에서 엿보이는 또 하나의 미셸 푸코의 흔적은 <성의 역사>이다. 미셸 푸코는 영국 빅토리아 여왕 시대부터 성은 은밀해졌다고 지적한다. 부르주아적 질서가 도래하면서 성은 자본과 권력에 의해 억압되고 관리되기 시작했다고 지적한 것이다. 권력은 성을 통제 수단으로 주목한 것이다.

이에 따라 미셸 푸코는 동성애가 정신병리학적 관점에서 설명되기 시작했음을 주목한다. '정상'에서 벗어난 것을 질병으로 규정해 관리하고 억압하려는 것으로 해석한 것이다. <핑거스미스> 속 두 여성 간 사랑과 동성애 장면은 미셸 푸코식 세계관을 명확하게 드러낸다.

게다가 빅토리아 여왕의 시대는 런던의 윤락가에서 5명 이상의 매춘부들을 잔혹하게 살해한 잭 더 리퍼가 활동하던 시대였다.

뒷골목에서 가장 위험한 환경에서 살아가는 여성들을 대상으로 한 범죄라고 규정할 수 있다. 수 트린더는 바로 그런 환경에서 살아가던 소매치기였다. 소매치기와 귀족 여성의 삶은 극적으로 대비된다. 따라서 그들의 미묘한 감정 교류와 동성애도 극적이다.

미셸 푸코의 <광기의 역사>와 <성의 역사> ⓒ나남출판

이와 같은 분위기는 엄격한 도덕의 시대였던 빅토리아 시대의 이면이었다. 도덕적 질서는 빅토리아 여왕이 직접 추구했다. 정부를 둔 남성들은 빅토리아 여왕의 레이저 광선으로부터 자유로울 수 없었고, 스캔들은 곧 매장의 길이었다.

하지만 그렇다고 정말로 '도덕의 시대'가 열렸을까? 아니다. 은밀한 사생활의 시대였고, 이면의 시대였다. 잭 더 리퍼는 이를 증명하는 시대의 사건이었으며, <핑거스미스>는 이를 지적한다. <핑거스미스>는 <벨벳 애무하기> <끌림>과 더불어 세라 워터스의, 빅토리아 시대에 대한 통렬한 비판이다.

<아가씨>가 우려되는 이유

<아가씨>는 결국 <올드보이>처럼 '파격'만을 앞세운다. BBC 드라마가 잘 구현했던 원작 속 빅토리아 시대에 대한 통렬한 비판이 섬세하게 살아있다. 

BBC 드라마가 왜 노출을 적절한 선에서 자제했을까? 원작의 역사적 배경과 철학적 메시지를 잘 구현하려는 취지일 것이다. 그런 관점에서 보면, <핑거스미스>에서 모드의 후견인이 외삼촌에서 이모부로 변경된 것도 결국 '파격'을 위한 변화일 가능성이 높다.

BBC 3부작 드라마 <핑거스미스>의 한 장면

박 감독의 <올드보이>는 동명의 원작 만화를 앞세워 실상은 데이빗 핀처 감독의 1997년 작 <더 게임>을 '많이 참고'해 소화한 작품이었다. 줄거리는 물론 구체적인 중요 장면까지 똑같았을 정도였다. "A를 내세우지만 실상 B를 그대로 옮긴다"는 박 감독 특유의 전략이 다시 반복될 가능성이 높다.

기대를 모았던 칸 영화제에서의 수상이 실패했으니, 국내 흥행 여부는 박 감독에게 매우 중요하다. 박 감독의 영화만 개봉하면 극찬 일색인 평론가들의 반응은 객관성을 담보하기 어렵다. 그들은 <올드보이>와 <더 게임>의 연관성을 십 수 년 넘게 알면서도 외면하고 있기 때문이다.

<더 게임>은 너무 알려진 영화라서 평론가들이 이를 모를 리가 없다. 박 감독이 평론가 출신으로서 가장 성공한 영화감독이라는 점도 객관성을 담보하기 어려운 환경으로 작용할 가능성이 있다.

일단 느껴지는 것은 이안 감독의 2007년 작 <색, 계>(링크 클릭)이며, 압델라티프 케시시 감독이 연출하고 레아 세이두와 아델 에그자르코풀로스가 주연한 2014년 작 <가장 따뜻한 색, 블루>(링크 클릭)이다. 따라서 <아가씨>도 <올드보이>처럼 "A를 내세워 실상 B를 아주 많이 참고하는 영화"일지 그 귀추가 주목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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