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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찬욱 '아가씨', 레즈비언 스릴러의 탈 쓴 동양 19금 영화 대백과?[리뷰] 세라 워터스가 칭찬을 했는지, 거리를 뒀는지 궁금해지는 영화 '아가씨'
박형준 | 승인 2016.06.01 13:36

언제나 변함없는 박찬욱 감독의 철학 드러낸 <아가씨>

"A를 내세운 뒤 실상은 B를 '많이 참고'한다"

영화 <아가씨> ⓒ모호필름

이것은 <올드보이>에서 본격적으로 드러났던 박찬욱 감독의 영화 철학 중 하나로 볼 수 있다.

<올드보이>는 동명의 만화를 원작으로 내세웠지만, 실상은 컷 단위 장면까지 비슷할 정도로 닮았던 작품은 데이빗 핀처의 1997년 작 <더 게임>이었다. 

<아가씨>는 2005년에 BBC에서 3부작 드라마로 만들기도 했던 세라 워터스의 <핑거스미스>를 원작으로 내세웠다.

많은 재산을 상속받을 귀족 여성에게 남성 사기꾼이 여성 소매치기를 접근시켜 음모를 꾸미지만, 정작 두 여성이 사랑에 빠지면서 일어나는 일들을 담은 작품이다.

BBC 드라마는 TV 방영용이어서 그랬는지는 몰라도 노출의 수위는 높지 않았다. 대신 빅토리아 시대의 위선과 정신병원이 권력의 장치로 작동하는 원리를 드러내는 등 미셸 푸코의 담론이 정교하게 반영됐던 작품이었다. 원작의 틀을 존중한 것이다.

하지만 "A를 내세운 뒤 실상은 B를 '많이 참고'한다"는 철학을 가진 것으로 볼 수 있는 박 감독이 과연 그런 철학을 존중할지에 대해서는 의구심이 많이 들 수밖에 없다. 언제나 강도 높은 폭력 및 노출 수위를 드러내길 좋아하는 박 감독이기 때문이다.

뚜껑을 열어본 <아가씨>는 '혹시나'가 아닌 '역시나'였다.

레즈비언 스릴러의 탈을 쓴 동양 SM에로 대백과?

BBC 드라마 <핑거스미스>는 노출 수위 대신 두 여성 주인공의 미묘한 심리에 대한 정교한 심리 묘사를 선택했다. 

하녀 수(샐리 호킨스 분)와 귀족 여성 모드(일레인 캐시디 분)은 사기꾼 젠틀맨을 둘러싼 음모 속에서 미묘한 감정을 느끼다가 결말에 이르러 서로에 대한 몰랐던 사실을 알게 된다는 것이 중요한 내용이다.

두 여성이 세상으로부터 어떻게 운명이 바뀌었고, 위선과 사악함이 가득한 남성들의 세계에서 여성이 어떻게 이겨내는지에 대한 섬세한 묘사도 가미돼 있다.

영화 <아가씨>의 한 장면 ⓒ모호필름

반면, 박 감독은 <아가씨>에서 강도 높은 노출 수위를 드러낸다. 물론 레즈비언 멜로물도 훌리오 메뎀 감독의 2010년 작 <룸 인 로마>처럼 수위가 높을 수 있다.

하지만 <아가씨>는 <룸 인 로마>의 베드신 틀을 참고한 듯 하면서도 결정적인 차이를 드러내고 있다. <룸 인 로마>는 끝까지 남성성의 개입을 거부했지만, <아가씨>는 실상 레즈비언 멜로물의 탈을 쓴 동양의 유명 SM에로 대전집을 지향했기 때문이다.

일본 작품으로는 오시마 나기사 감독의 1976년 작 <감각의 제국>과 일본의 유명 성애 영화 시리즈 <꽃과 뱀>의 향기가 짙게 배어 있다. 나아가 홍콩의 성애 영화 시리즈 <옥보단> 역시 상당한 참고를 한 것으로 보인다. 

앞서 이야기했듯이 <룸 인 로마>는 여성이 쾌락을 추구하는 과정에서의 남성성의 개입을 거부했다. 따라서 여성만의 정체성을 강화시키는 장치를 한다.

하지만 <아가씨>는 레즈비언 멜로물을 내세웠지만, 실상은 레즈비언 멜로물에 대한 남성의 성적 관음증만이 대거 개입된 작품들이 연달아 개입된 것으로 보인다. <꽃과 뱀> 시리즈는 SM 취향을 정면으로 묘사한 작품으로 유명하다. 

특히 중요했던 것은 이모부(조진웅 분)가 아내(문소리 분)와 조카(김민희 분)에게 귀족들 앞에서 하길 원하는 행위는 미드 <스파르타쿠스> 시리즈에서 로마 귀족이 노예들에게 하길 강요했던 행위를 순화시켜 돌려 친 묘사로 볼 여지가 크다. 어지간한 해외의 성인물 속 묘사들을 총동원한 것이다.

결국 <아가씨>는 이야기의 틀만 <핑거스미스>를 참고한 것일 뿐, 실상은 다른 영화들을 '많이 참고'하는 등 박 감독이 자신의 철학을 여전히 견지하고 있음을 볼 수 있다.

김기덕의 길을 참고했을까

그렇다면 왜 레즈비언 스릴러를 원안으로 남성의 시선으로 여성의 육체를 바라보는 영화를 제작했는지 그 동기에 매우 큰 궁금증이 생긴다.

이와 같은 연출 방식을 즐기는 영화인으로 김기덕 감독을 들 수 있다. 김 감독은 자신의 작품에서 여성을 가혹하게 다루는 것으로 유명하다. 하지만 정작 남성들도 이런 장면을 불쾌히 여기는 것이 특기할 사항이다. 마음 속 깊은 곳에 묻어둔 사악한 본능이 들키는 것 같기 때문일지도 모른다.

영화 <아가씨>의 한 장면 ⓒ모호필름

<아가씨>는 영화 말미에 이르러 김 감독의 길을 차용한다. 이모부와 사기꾼 백작(하정우 분)이 후반부에 거칠게 나누는 대화는 완전한 다른 세상의 이야기이며, 사악한 본능의 결집체이다. 마치 김기덕 감독의 <나쁜 남자>를 연상시키는 장면이기도 하다.

과연 목적이 무엇이었을까? 남성 중심적 시선으로 여성의 육체를 바라보는 등 찌들은 시선을 그대로 반영한 것일까? 아니면 김 감독처럼 마음 속 심연을 끄집어내 불편한 진실을 알려주려는 목적을 가진 것이었을까?

하지만 분명한 진리는 하나 있다. <핑거스미스>는 사실 약간은 지루한 작품이다. 하지만 그 주제의식만큼은 명료했고 어렵지 않았다. 그에 반해 <아가씨>는 박 감독의 작품에 늘 제기할 수 있었던 지적 "지나치면 모자람만 못하다"는 말이 새삼 진리임을 깨닫게 한다. 

박 감독이 왜 언론에 "<핑거스미스>의 원작자 세라 워터스가 <아가씨>의 각본을 본 뒤 칭찬했다"고 굳이 언급했는지, 영화를 감상하면 깨달을 수 있을 것 같다. 

박 감독의 말에 따르면 세라 워터스가 <아가씨>의 각본을 본 뒤의 반응은 "be inspired by"였다고 한다. 이 숙어는 "~에 의해 영감을 받다"라는 말이다. 박 감독은 "세라 워터스가 Based on이 아닌 inspired by라고 말하며, '자신의 작품과 상당 부분 다르다'고 말했는데, 이것은 나에게 칭찬"이라고 말한 것이다.

이게 칭찬인지, 자신의 작품과 거리를 두길 바라는 것인지에 대해서는 각자 다른 반응을 보일 수도 있다.

하지만 '칭찬으로만' 해석하기에는 묘한 말임이 틀림이 없다. <아가씨>를 보면 세라 워터스가 왜 그런 말을 했는지 명확하게 파악할 수 있다. 칭찬이 됐든 거리두기가 됐든, 박 감독은 개의치 않겠지만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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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형준  ctzxpp@g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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