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단여백
HOME 영화
'터널' 정치인·언론의 패륜성에 대한 용기있는 고발[리뷰] 쉽지 않았을 언론의 패륜성에 대한 고발, 용기 있다
박형준 | 승인 2016.08.10 15:40

재난 상황에서의 고독한 생존

영화 '터널' ⓒ㈜비에이엔터테인먼트

김성훈 감독·하정우 주연의 영화 <터널>은 재난 상황에서의 고독한 생존기를 다룬다. 정수(하정우 분)은 자동차를 몰고 터널을 지나다가 터널이 무너져 고립된다.

하지만 구조 작업은 기약이 없으며, 정수에게 남은 것은 배터리 78%가 남은 휴대전화와 500ml 생수 2병·딸의 생일 기념으로 샀던 생크림 케이크 밖에 없다.

문제는 구조 상황이 지지부진하면서 여론이 분열됐다는 것이다. 아니, 여론이 분열됐다기보다 돈에 미쳐 날뛰는 토건족들이 고의적으로 언론플레이를 한다.

그들은 정수의 사망을 이미 기정사실화하며 인근의 다른 터널 공사에 차질을 주기 전에 구조 작업을 멈춰야 한다고 주장하는 것이다.

소재원의 동명 소설을 원작으로 하는 <터널>은 하정우가 고립된 상황에서 긴박한 스릴을 이끈다는 측면에서 <더 테러 라이브>를 연상시킨다. 한편으로 고립된 상황에서의 생존기를 다룬다는 측면에서 맷 데이먼 주연의 <마션>을 떠올리게 하는 측면도 있다. 

한국영화의 공식대로라면 이런 상황에서는 눈물 콧물 다 흘려가며 억지 감성팔이에 주력하려고 한다. 하지만 <터널>은 인간군상의 다양한 감정 구조와 이익에 매몰된 단면을 여과 없이 주목하며 사회 그 자체를 질타한다. 

이런 암울한 상황에서 관객을 지나치게 우울하게 할 것을 염려하며 아이러니한 웃음을 유발하려고 노력한다는 것도 의미심장하다. 사실 그래서 더 슬프고, 인간의 존재에 대한 고민을 하게 된다. 인간은 어쨌든 살아야 한다.

영화 '터널'의 한 장면 ⓒ㈜비에이엔터테인먼트

참사 상황, 정치인·언론의 패륜성

<터널>이 가장 비판적으로 접근하는 대상은 정치인과 언론이다. 정치인은 참사 현장에 도착해 정수의 아내 세현(배두나 분)부터 찾는다. 정수의 구조 상황 파악보다는 카메라를 의식하며 세현과 사진 찍는 것에 몰두하는 것이다.

언론도 마찬가지라서 정수의 안전 따위는 관심 없고, 오로지 기사 작성과 보도에만 혈안이 돼 다양한 패륜 행각을 벌인다. 문제는 이 모든 것들은 우리가 그동안 두 눈으로 똑똑히 봤던 것이며, 영화는 오히려 그 패륜의 강도를 약화시켜 연출했다는 사실이다.

사진 찍기에 혈안이 된 정치인의 모습은 1997년 8월 6일 미국령 괌에서 추락한 대한항공 801편 추락 사고에서 확인할 수 있었다. 여당 신한국당 소속 국회의원은 조사단이라는 명목으로 추락 현장을 방문해 항공기 잔해를 배경으로 기념촬영에 열을 올렸다.

'경향신문' 1997년 8월 12일자 기사 '의원들 사고현장서 기념촬영 추태 유가족 50여명 격렬 항의' ⓒ네이버 뉴스라이브러리

그렇다면 이를 열렬히 비판했던 언론은 과연 패륜 행각으로부터 자유로울까? 그럴 리 없다.

일단 언론인 출신의 야당의 모 전 대선 후보는 1995년 삼풍백화점 붕괴 참사에서 생방송을 진행하던 중 매몰된 생존자를 구조하려던 구조대가 "비켜 달라"고 요구하자 "생생한 중계를 위해 자리를 양보할 수 없다"고 대놓고 말했던 사실이 있다. 

1993년 서해 훼리호 침몰 사고에서는 유력 언론이 앞장서서 선장의 생존 후 도주설을 제기했다가 선장의 시신이 발견되면서 유가족이 거칠게 항의하는 일도 있었다. 수사기관은 언론의 오보를 믿고 선장 백 모 씨를 전국에 지명수배하는 촌극을 벌였다.

큰 파문을 일으켜 유가족의 격렬한 항의를 유발했던 '한겨레'의 1993년 10월 13일자 오보 ⓒ네이버 뉴스라이브러리

이와 같은 언론의 패륜 행각은 보수와 진보를 구분할 필요가 없다는 사실이 의미심장하다. 패륜 행각이 정점에 달했던 시기는 2014년 세월호 참사였다. 가장 심각한 사례들만 대략 정리하면 아래와 같다.

 ① 모 통신사의 사진기자 K는 단원고 교실에 침입해 사망한 학생의 물건을 함부로 뒤져가며 사진을 촬영했다. 한 네티즌이 이에 항의하자 "뭐가 잘못된 것인지 설명하라"고 답변한 것으로도 유명하다.

 ② 모 종편의 현장 파견 앵커 P는 언론인 출신 모 전 대선 후보를 흉내 내고 싶었던지 구조된 생존자에게 "친구의 사망 사실을 알고 있느냐"는 질문을 했다. 

 ③ 모 공중파 방송의 기자 P는 단원고 재학생에게 트위터에서 "침몰 당시 배 안에 학생들이 찍은 사진을 가지고 있느냐"는 질문을 했다.

 ④ 같은 공중파 방송의 기자 L은 구조된 6세 어린이에게 부모의 행방을 물었다.

이런 상황은 재난 상황에서만 벌어지는 일이 아니다. 올해 2월 알려진 부천 여중생 백골 시신 사건에서도, 피해자 이 모 양의 학대 사실을 진술한 친구 A양에 대해 무차별 인터뷰 요청을 하며 A양에게 극심한 피해를 준 사례를 확인할 수 있다. 

지금은 삭제된 모 통신사 사진기자의 기사 ⓒ네이버

<터널>이 주는 메시지는 간결하다. 이익에 미쳐 살면 인간성을 잃어버린다는 것이다. 정치인·토건족·언론인은 모두 자신의 이익을 위해 남에게 피해를 주고도 무엇을 잘못했는지 모르는 사람의 대표적인 예시이다.

<터널>이 자극하는 '불편한 진실'

<터널>이 흥미로운 이유는 <내부자들>보다 더 노골적으로 언론의 폐해를 고발한다는 사실이다. 할리우드에서는 <네트워크> 등의 영화가 언론을 강도 높게 비판했던 바 있지만, 한국에서는 쉽지 않은 일이다. 현실적 묘사를 선택한 것과 더불어 용기 있는 뚝심이라고 평가할 만하다.

영화 '터널'의 한 장면 ⓒ㈜비에이엔터테인먼트

이 모든 것들은 불편한 진실이다. 목적을 위해서 가차 없이 인간성을 버린 사람들의 존재, 그리고 그 선봉에 선 사람들이 '제4의 권력'을 거론하는 언론인이라는 사실은 한국 사회에서도 꽤나 아이러니하다.

주요 언론은 일명 '김영란법'으로 통칭되는 '부정청탁 및 금품등 수수의 금지에 관한 법률'에 대해서도 내수 걱정을 하면서 은근하게 반대 입장을 지지했다. 언론인 관련 협회에서는 대놓고 반대 성명을 발표했다가 기자들조차 비판하는 일도 있었다. 그런 그들을 기억하며 <터널>을 보면 더 큰 아이러니를 느낄 것으로 예상된다.


- 로디프 트위터(링크 클릭) - http://twitter.com/sharpsharp_news

- 로디프 페이스북(링크 클릭) - http://www.facebook.com/sharpsharpnewsom

박형준  ctzxpp@gmail.com

<저작권자 © 로디프,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박형준의 다른기사 보기
icon인기기사
기사 댓글 0
전체보기
첫번째 댓글을 남겨주세요.
여백
여백
로디프 소개취재방향로디프 기자윤리강령기사제보광고문의불편신고개인정보취급방침청소년보호정책이메일무단수집거부
로디프  |  서울 강북구 인수봉로23길 36 302호  |  대표전화 : 010-5310-6228  |  등록번호 : 서울 아03821
등록일 : 2015년7월14일  |  발행일 : 2015년8월3일  |  발행인/편집인 : 박형준  |  청소년보호책임자 : 서명원
Copyright © 2021 로디프. All rights reserved.
Back to Top