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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물' 김기덕은 세계관의 성을 다지기 시작했다[리뷰] 국가 폭력이라는 '그물'에 펄떡거리는 그 물고기들
박형준 | 승인 2016.10.06 18:25

'남성'이 김기덕 감독에게 준 삶의 압박

영화 '그물' ⓒ㈜김기덕필름

2001년 개봉 영화 '수취인불명'은 김 감독의 삶을 간접적으로 돌아볼 수 있는 영화이다.

상이용사였던 아버지는 거칠었으며, 영화에서 '지흠'(김영민 분)의 아버지(명계남 분)로 캐릭터화됐다. 김 감독 본인은 나약하고 섬세한 '지흠'으로 등장한다.

알려지다시피, 김 감독은 해병대 부사관 출신이다. 시대의 피해자였던 아버지가 준 '남성적 압박'과 초졸이라는 저학력자로서의 콤플렉스에서 벗어나기 위한 몸부림이었다고도 알려졌다. 

그의 영화 속에서 여성 캐릭터들은 너무 거칠게 다뤄져서 여성주의자들의 끊임없는 공격이 이어진다.

하지만 데뷔작 '악어'로부터 시작해서 '나쁜 남자' '사마리아' 등은 본능에 미쳐 비열한 행각을 일삼는 남성들의 이중성이 끊임없이 이어진다.

그런 그가 자신의 경험을 토대로 국가와 공권력을 다룬 작품은 장동건이 주연을 맡아 유명한 '해안선'(2003)'이다.

남성의 폭력과 국가 폭력을 교차시켜 김 감독 특유의 파격적 결론을 이끌어낸 작품이기도 하다. 2014년 개봉작 '일대일'은 김 감독 스스로 "노무현 전 대통령에게 드리는 고백"이라는 입장을 밝힘으로써, 정치성을 드러냈다.

'그물'은 류승범을 주연으로 캐스팅해 제작된 영화로서, 김 감독이 바라보는 남북분단이 좀 더 명확하게 드러난다. 그리고 여기에는 김 감독의 영화적 특성이 세계관으로 구축되는 양상을 확인할 수 있다.

20년간의 상징이 모두 모이다

국어 교과서에도 수록된 최인훈의 소설 '광장'은 해방 직후 남북의 절망적 현실을 두루 경험한 주인공 명준이 6·25 전쟁 이후 중립국으로 가길 바라는 것으로 유명하다. 

북한 어부 남철우(류승범 분)는 이념이고 뭐고 다 떠나서 물고기를 잡아 아내·딸과 함께 소박하게 살길 바라는 평범한 남자이다. 하지만 고깃배의 모터가 고장남으로써, 그는 남한으로 표류했고 국가정보원 요원들과 조우하게 된다. 

영화 '그물'의 한 장면 ⓒ㈜김기덕필름

국가정보원 요원들은 그를 가만히 둘 생각을 하지 않는다. 간첩이라고 몰아붙이기도 하고, 귀순을 유도하기도 한다. 따라서 '그물'은 중의적 의미를 가진 제목으로 볼 수 있다. 어부 남철우의 생명줄이기도 하지만, 남북 분단의 제물 신세가 된 그의 현실을 상징하는 것이기도 하다.

이 과정에서 김 감독의 특성들은 세계관을 상징하는 전형으로 자리 잡기 시작한다. 김 감독의 다른 작품들에 비해 폭력적 묘사는 줄었지만, 20년 간 제시됐던 상징들이 모두 조합된 것이기도 하다. '그물'을 감상하기 전에 알아두면 좋은 요점은 아래와 같다.

: 김 감독의 영화에서 물은 모성의 상징이고, 고향이다. '악어' '섬' 등에서도 물이 갖는 모성적 상징성을 여과 없이 상징한다. '그물'에서도 '물'은 아주 중요한 상징적 매개체이다.

국가 폭력과 남성성 : 국가정보원 요원들은 국가 폭력을 상징한다. 1990년대와 2000년대 초반 여성을 향해 폭력을 휘두르는 것으로 드러났던 남성적 힘은, '해안선' 이후 서서히 국가 폭력으로 확산돼 묘사되는 경향이 보인다. 

③ 카메라에 대한 공포 : '숨'(2005)에서 비중 있는 영화적 상징은 카메라이다. 영화에서 카메라를 움직이는 주체는 교도소 내의 권력자 보안과장이다. '그물'에서도 카메라는 국가정보원의 힘을 상징한다. 

④ 심약한 관찰자 : 전도유망한 배우 이원근은 국가정보원 요원들 중 유일하게 남철우를 진심으로 걱정하며, 폭력을 막으려 애쓰는 인간적인 캐릭터로 등장한다. 

'수취인불명'의 지흠과도 연결될 수도 있는 캐릭터로서, 김 감독 본인을 상징하는 것일 가능성이 있다. 당시 '지흠' 역을 맡았던 배우 김영민은 '그물'에서 남철우를 향해 거침없는 폭력을 휘두르는 레드 콤플렉스 환자로 등장한다.

영화 '그물'의 한 장면 ⓒ㈜김기덕필름

⑤ 모성에 대한 김 감독의 생각 : 여성주의자들이 김 감독을 지속적으로 비판하는 이유는, "여성에게 모성적 역할을 강요하는 것 아니냐"는 것이다. 김 감독의 영화 속에서 모성은 치유와 용서의 상징이다. 이는 물과도 맞물리는 경향이 있다. '그물'에서도 모성은 순간이나마 비중 있게 등장한다.

문법은 쉬워지되, 정치적 성향은 명확해지다

'그물'은 '일대일' 이후 김 감독의 정치적 성향이 더욱 뚜렷하게 드러낸 작품으로 기록될 것으로 보인다. 2012년 대선 정국을 달궜던 국가정보원 관련 논란이 직접적으로 제시되고 있기 때문에 눈여겨볼 만하다.

아울러 최인훈의 '광장'을 참고한듯 남북한 권력자들의 비정한 '그물'을 모두 묘사하고 있다는 점도 주목해야 한다.

다만 아쉬운 것은 열악한 제작 여건 탓인지, 대한민국 군인들이 여전히 구형 개구리 군복을 입고 등장한다는 것이다. '해안선'에서도 해병대원들을 등장시켰음에도 미군 군복에 구형 M16A1 소총을 사용함으로써 아쉬움을 남긴 바 있다. 

김 감독은 '그물'을 통해 자신의 성을 공고히 다지기 시작했음을 드러내고 있다. 상징은 두루 모였으며, 문법은 쉬워졌다. 대신 정치적 성향을 명확히 드러냈다.

남성적 압박으로부터 벗어나기 위해 몸부림쳤던 젊은 시절의 김 감독을 안다면, 그의 야당 성향은 자연스러운 결과일지도 모른다. 

영화 '그물'의 한 장면 ⓒ㈜김기덕필름

'악어' 이후 어느덧 김 감독도 영화를 연출한지 20년이 넘었다. 일상의 폭력을 넘어 국가 폭력을 전면으로 다루기 시작했다는 점은, 김 감독이 이제는 원숙해진 나이만큼 좀 더 폭넓게 세계를 다루기 시작했다는 의미로 볼 수도 있겠다.

그물 속에서 펄떡거리는 물고기는 결국 남북 분단 속에서 국가 폭력에 노출된 우리 모두를 가리키는 것일지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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