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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판도라' 뻔한 신파, 그러나 위로받고 싶은 사람들[리뷰] 연이은 참사와 국정농단 사태, "영화는 현실을 능가하지 못한다"는 그 씁쓸한 속설
박형준 | 승인 2016.12.07 14:00

'세월호 7시간'에 왜 분개하는가

영화 '판도라' ⓒCAC 엔터테인먼트, 시네마파크

그래, 야당이 세월호 참사를 박근혜 대통령과 여당을 공격하는 정치적 소재로 이용했다고 치자. "내 잘못은 인정하지 않고 싶지만 남의 약점은 열심히 공격하고 싶은 것"은 여야 구분을 떠나 어차피 정치꾼들의 속성이다.

뿐만 아니라, 세월호 사망자의 일부 유족이 한밤중에 국회의원과 어울려 술을 마시다가 힘 없는 대리기사에게 행패를 부리며 폭행을 했다는 것도 그렇다고 치자.

언론의 주목과 옹호를 받으면서 큰 권력을 쥔 듯한 태도를 취하며 약자를 괴롭혔다는 것은 아무리 세월호 사망자의 유족이라고 해도 비난받아 마땅한 행동이다.

그렇다고 해도 "대통령이 대형 참사 현장에 나타나기까지 7시간 동안 행적이 묘연했다"는 사실은 보통 일이 아니다.

사람들은 이것을 직무유기로 이해한다. 대통령의 가장 기본적 책무는 국민의 생명과 재산을 지키는 것이다. 대형 참사가 일어났다면, 대통령은 신속하게 상황을 보고받으며 시스템을 가동시켜 현장을 지휘해야 한다. 

현장에 나타난 대통령은 실질적으로 뭘 할 수 있는 것은 아니다. 하지만 현장에서 피해자 및 유족들과 슬픔을 공유하며 현장을 수습할 공무원들에게 거시적 지시 사항을 남기는 것도 중대한 역할이다. 그런데 박 대통령의 7시간은 여전히 미지의 영역이다. 

잠재돼 있던 국민적 분노는, 아무런 직책도 자격도 없는 민간인 최순실 일당과 사실상 국정 운영을 공유하며 농단을 방치 혹은 가담했다는 '박근혜-최순실 게이트'의 폭발과 함께 기어이 터져 버렸다. 추운 겨울에도 촛불이 꺼지지 않는 이유이다.

원자력 발전소 사고, 열려버린 '판도라'

'연가시'를 연출했던 박정우 감독의 신작 '판도라'는 7일 개봉했다. 모티브가 된 소재는 2011년 3월 11일 일본에서 발생한 후쿠시마 원자력 발전소 사고이다. 

지진의 여파로 발전소가 정전돼 원자로를 식힐 바닷물을 끌어오는 것을 망설인 사이 원자로의 노심이 녹아내려 결국 원전이 폭발한 사고이다.

일대가 방사능 오염 천지가 되는 것은 자연스러운 수순이며, 그 유출은 아직까지도 이어지고 있다. 바닷물을 끌어들여 원자로에 집어넣는 순간 비싼 원자로가 무용지물이 되는 것을 우려한 결과이다. 결국 돈 때문이었다.

영화 '판도라'의 한 장면 ⓒCAC 엔터테인먼트, 시네마파크

영화에 등장하는 '한별 원자력 발전소'의 모델은 고리 원자력 발전소이다. 1호기는 원래 2007년 30년의 수명을 마쳤지만, 10년 더 연장됨에 따라 2017년 6월까지 가동된다. 후쿠시마 원자력 발전소 사고 후 원자력 발전에 반대 의견을 가진 사람들의 비판 대상이 되고 있다. 

'판도라'의 현실성을 더 하는 소재가 있다면, 9월 12일 경북 경주에서 발생한 리히터 규모 5.1, 5.8 규모의 지진이다. 참사 이후의 이미지에 경주 지진에 따라 사람들이 느꼈을 혼란이 연상시킬 장면들을 집어넣은 것이다.

정말로 우리나라에서 원자로가 폭발할지에 대해서는 전문가들과 이해관계자들 간 치열한 논쟁이 벌어지고 있다. 실제로 일어날 일인지에 대해서는 아무도 장담할 수 없다. 

중요한 것은, 만에 하나라도 비극이 일어나지 않기 위해 미리 준비하고 대비해야 한다는 것이다.

우리나라에서 일어났던 참사들은 대개 안전불감증과 비용 투입에 대한 두려움 때문에 대비를 소홀히 하다가 일이 커지는 예가 많다. '판도라'는 원자력 폭발을 소재로 하고 있지만, 결국 세월호 참사와 연결되는 것이다.

세월호 참사를 비롯한 모든 참사들은 열어서는 안될 상자였다. 그래서 영화 제목 '판도라'는 아주 잘 지어진 제목이다. 

무능하고 무책임한 고위층과 희생하는 서민의 대비, 그 뻔한 신파

진보 성향의 소재를 취하고 있음에도 일부 평론가들의 평은 부정적이다. 왜냐하면, 이런 류의 영화가 늘 그렇듯이 고질적인 뻔한 신파 구조의 서사를 취하고 있기 때문이다.

악역은 국무총리 역을 맡은 이경영과 일부 공무원 역을 맡은 배우들이 전담한다. 대통령으로 특별출연한 김명민은 감독의 전작 '연가시'에서의 인연이 작용한 것으로 보인다.

대통령과 국무총리의 구도는 매우 흥미롭다. 일반적으로 국무총리는 대통령의 정치적 필요에 의해 수시로 갈아치워지는 신세인 경우가 많지만, '판도라' 속 국무총리는 거의 국정농단 수준으로 얄미운 악역을 도맡기 때문이다.

영화 '판도라'의 한 장면 ⓒCAC 엔터테인먼트, 시네마파크

그런 가운데 드러나는 것은 정보를 무작정 통제하려고만 하고, 국민에 닥친 위험을 방기하는 정부의 고질적인 이미지이다.

이것은 대한민국 뿐만이 아니라 전세계 영화 장르의 공통적 특징이다. 문제는 이게 관객들에게는 아주 현실적인 인상을 준다는 점이다. 정치인과 고위 공무원들의 분발이 필요한 지점이다.

희생은 당연히 평범한 서민의 몫이다. 주인공은 강재혁(김남길 분)은 발전소의 하청업체 직원이며, 아버지와 형도 불의의 사고로 방사능에 피폭돼 죽었다. 

그런 가운데 방사능 때문에 또다시 위기에 처하게 되는 것이다. 그래서 '판도라'는 평범한 사람들의 삶, 그리고 정부에 의해 버려지는 그들을 집중적으로 조명한다.

전대미문의 민간인 국정농단 사태를 실시간으로 목격하는 사람들로서는 그럴듯한 개연성을 다시 느낄 수 밖에 없는 부분이다.

'판도라'는 그들에게 얼마나 가슴 아픈 사연이 있는지, 위험 속에서 느끼는 공포가 어떤 것인지에 대해 집중한다. 여기서 조금 더 구도를 비틀었더라면 서사 구조의 미학적 요소도 인정받을 수 있었을 것이다. 그 점이 다소 아쉽게 느껴진다.

영화 '판도라'의 한 장면 ⓒCAC 엔터테인먼트, 시네마파크

하지만 영화는 규모의 경제이다. 블록버스터는 많은 돈이 제작비로 투입된다. 쉽게 가야 많은 사람들이 영화를 본다. 알면서도 어쩔 수 없었던 선택이었을 수도 있다. 그래서 이해가 간다.

무엇보다 박근혜 정부 출범 이후 여기저기서 터져나간 각종 비극과 전대미문의 사태 등은, 앞서 이야기했듯이 아주 현실적인 인상을 준다. 

그리고 클라이맥스에서 정점에 달하는 신파는 영화 장르의 고전적 설정이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희망을 가지고 싶은 관객의 마음 속을 자극한다. 희망이 없으면, 사람은 살 수 없다.

영화보다 더 슬픈 것은 결국 현실이었다. 영화 속 대통령은 국무총리와의 갈등 속에서도 참사에 따른 피해를 막으려고 고군분투한다. 책임감과 그에 따른 고뇌가 무엇인지도 잘 알고 있다.

하지만 현실의 대통령은 참사 당일 7시간 동안 뭘 했는지 아직 아무도 못한다. 정말로 미용사를 불러 머리를 매만졌을까? '판도라'를 본 뒤 다시 현실을 보면, "영화는 현실을 능가하지 못한다"는 속설이 새삼 씁쓸하게 느껴질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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