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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기춘의 무죄 논리, 어떻게 행정법을 가지고 놀았나[김기춘·조윤선 등 문화계 블랙리스트 재판 ①-2] '법마' 김기춘, 과연 살아남을 것인가
박형준 | 승인 2017.04.09 20:30

'김기춘 스타일' 볼 수 있는 초원복국 사건과 93헌가4 결정문

제14대 대통령 선거를 1주 앞둔 1992년 12월 11일, 부산의 초원복국에는 부산의 권력기관장들이 모여 식사를 하고 선거에 대한 이야기를 했다.

부산직할시장·부산지검장·부산 기무부대장·부산 상공회의소 소장과 부회장·안기부 부산지부장·부산교육청 교육감 등 부산을 움직이는 모든 권력기관장이 집결한 것이다.

그런 가운데 그들 중에는 공직자가 아닌 '일반국민'이 1명 있었다. 그는 바로 김기춘 전 법무부 장관이었다. 그들은 그 자리에서 다음과 같은 이야기를 나누었다. 

"우리가 남이가?"

"부산·경남·경북까지만 요렇게만 딱 단결하면 안 되는 일이 없다. 5년 뒤에는 대구 분들하고 서울 분들하고 다툼이 될는지…그때 대구 분들 우리에게 손 벌리려면 지금 화끈하게 도와주고…."

"지역감정이 유치할진 몰라도 고향 발전엔 도움이 돼."

"하여튼 민간에서 지역감정을 좀 불러일으켜야 돼."

이 대화는 곧 파문을 일으킨다. 정주영 후보를 내세운 통일국민당 사람들이 이 대화를 도청해 세상에 폭로한다.

통일국민당이 공개했던 초원복국 '선거대책회의' 참석자들의 면면

하지만 결과는 엉뚱하게도 영남의 결집으로 김영삼 후보의 당선으로 드러났다. 주류 언론이 '불법 도청'에 시선을 집중시켜 의도적으로 '김영삼 선거운동'을 했기 때문이었다. 

당시 도청을 해왔던 통일국민당 관계자들은 주거침입죄로 처벌을 받았다. 당시의 판례는 현재 형법을 공부할 때, 반드시 순례해야 할 판례로 남아 있다. 취지는 다음과 같다. (판결문 전문 링크 클릭)

"음식점은 물론 누구나 드나들 수 있는 곳이라 주거침입죄가 성립되지 않는다. 하지만 '도청을 하러 간 것'을 영업주가 알았더라면, 출입을 허용하지 않았을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주거침입죄가 성립된다."

그렇다면, 당시의 대화 참가자들은 어떻게 됐을까? 김기춘만이 대통령선거법 위반 혐의로 기소됐다.

그런데 여기서 김기춘은 기발한 발상을 한다. 대통령선거법 제36조 제1항에 대한 위헌법률심판 제청 신청을 해, 법원이 이를 받아들였고, 헌재가 위헌 결정을 한 것이다. 

 구 대통령선거법 제36조(선거운동을 할 수 없는 자) ① 정당·후보자·선거사무장·선거연락소장·선거운동원 또는 연설원이 아닌 자는 선거운동을 할 수 없다. 다만, 후보자의 배우자, 후보자 및 그 배우자의 직계 존·비속과 형제자매, 후보자의 직계비속 및 형제자매의 배우자(이하"가족"이라 한다)는 그러하지 아니하다. 

당시 김기춘의 논리를 일상 언어로 표현하면 다음과 같다.

"일반인이 선거운동을 하면 처벌된다고 하는 게 말이 되느냐? 국민의 기본권을 지나치게 침해할 우려가 있다. 단순한 의견 개진과 선거운동의 차이도 모호하다. 나는 후보자와 선거에 관한 의견을 나누었을 뿐인데, 그게 왜 죄가 되느냐?

일반 국민들은 선거에 대한 대화 한 마디 한 마디를 조심해야 하는 불안감을 갖게 될 것이다. 이는 국민의 인간으로서의 존엄과 가치를 위축시키고 기본적 인권의 보장과 행복추구권도 침해할 우려가 있다."

초원복국 사건은 ▲'법률 미꾸라지'로서의 김기춘과 ▲정윤회의 국정개입 의혹이 아닌 문서 유출에 초점을 맞춘 대응을 이미 예고했다는 점에서 2017년 '박근혜·최순실 게이트'가 진행 중인 현 시국에도 의미가 있다. 

김기춘은 '문화예술계 블랙리스트' 사건의 주요 가담자로서, 직권남용 권리행사방해·강요죄가 적용돼 2017년 2월 7일 구속 기소됐다.

만 77세 2개월여의 나이에 구치소로 간 것이다. 그는 현재 서울구치소의 최고령 수감자라고 한다.

문화예술계 블랙리스트, 왜 범죄인가

박영수 특검에 따르면, 박근혜 전 대통령과 김기춘은 자신들의 정치 성향에 맞지 않는 문화·예술 콘텐츠에 대단히 투쟁적인 반응을 보였다. 그러면서 그에 맞설 만한 콘텐츠의 양성을 주장했고, 이를 '건전 콘텐츠'라고 불렀다. 

건전 콘텐츠를 키우자면, 그들이 '반정부 콘텐츠'라고 부르는 정부 비판적 혹은 세월호 추모 성격의 콘텐츠의 기를 꺾어야 했다. 금전적 사정이 열악한 문화·예술계의 특성은 이들에게 훌륭한 '이용거리'였던 것 같았다. 

그래서 문체부에 지시를 한다. "반정부 콘텐츠에 돈을 주지 않아야 하므로, 그런 성향의 문화·예술인들의 명단을 작성하라"고 말이다. 이렇게 해서 도합 9,473명의 '지원배제 명단'이 작성됐다.

김기춘 전 대통령 비서실장 ⓒSBS

여기서 분명히 전제해야 할 것이 있다. 일부 사람들은 "문화·예술인들에게 돈을 주지 않은 것이 범죄 혐의"라고 생각할 수도 있다.

하지만 그게 아니다. "돈을 주지 않기 위한 목적의 명단을 작성하라고 공무원들에게 업무상 지시·강요한 것이 범죄 혐의"다.

지원금을 주는 행위는 행정법상으로는 재량행위에 해당한다. 쉽게 말해, "문화·예술에 지원을 해야 하는 의무"는 국가에 있지만, "문화·예술인들 중 누구에게 돈을 줄 것인지 결정하는 것은 정부의 선택"이다. 

모든 문화·예술인들에게 지원을 할 수 없다. 따라서 일부에게만 지원을 할 수 밖에 없다. 많은 문화·예술인들 중 지원 대상자를 선택하는 일은 전문적 영역에 속하기 때문에 포괄적으로는 정부의 재량이다.

김기춘은 이것을 무죄 논리로 삼았다. 이름하여 '수혜적 재량 행위'라는 논리를 꺼내든 것이다. 그러면서 다음과 같이 주장했다

"공공임대주택 분양 기준을 소득이 아니라 결혼·자녀 수로 바꾼다는 가정을 해 보자. 특검의 주장대로 이를 해석하면, 빈곤층은 정부를 지지 안 해서 지원 대상에서 배제한 것으로 볼 수 있다."

김기춘 특유의 물 타기 논리가 제대로 살아있는 주장으로 볼 수 있다. 김기춘은 행정법상 재량 논리를 기막히게 동원했다. 

공무원들에게 지원 배제 명단 작성을 강요했다"는 취지의 공소사실이 아니라, "문화·예술인에게 돈을 주는 기준도 다 다를 수 있지 않느냐"로 초점을 옮기려 한 것이다. 

하지만 김기춘은 헌법을 도외시했다. 우리 헌법에는 다음과 같은 조항들이 있다.

 대한민국 헌법 전문 중 일부  "(전략) 자율과 조화를 바탕으로 자유민주적 기본질서를 더욱 확고히 하여 정치·경제·사회·문화의 모든 영역에 있어서 각인의 기회를 균등히 하고 능력을 최고도로 발휘하게 하며… (후략)"

 대한민국 헌법 제11조 ① 모든 국민은 법 앞에 평등하다. 누구든지 성별·종교 또는 사회적 신분에 의하여 정치적·경제적·사회적·문화적 생활의 모든 영역에 있어서 차별을 받지 아니한다.

 제19조 모든 국민은 양심의 자유를 가진다.

 제21조 ① 모든 국민은 언론·출판의 자유와 집회·결사의 자유를 가진다.

 제22조 ① 모든 국민은 학문과 예술의 자유를 가진다.

"야당 후보를 지지했거나, 세월호 참사를 거론해 박근혜 정부를 비판한 것"을 이유로 지원 배제 명단을 작성하는 것은 명백한 위헌적 행위이다.

이를 공무원들에게 직무상 지시하고 강요했다면, 직권남용 권리행사방해·강요가 성립될 수 밖에 없다. 지시에 불응한 공무원의 사직을 강요했다면, 이 역시 직권남용 권리행사방해·강요에 해당한다.

따라서 본질을 정확히 알고 판단해야 김기춘의 공소사실을 명백하게 이해할 수 있다. 문화·예술인들에게 돈을 주는 기준은 국가의 재량일 수도 있다. 

조윤선 전 문화체육관광부 장관 ⓒSBS

하지만 재량은 헌법과 법률의 틀 안에서 행사해야 한다. 정치적 기준을 토대로 지원 배제 명단을 작성하라고 했다면, 위헌이고 위법이다. 이를 공무원에게 직무상 지시·강요했다면, 이는 범죄다. 이를 따르지 않았다는 이유로 공무원의 사직을 강요했다면, 이 역시 범죄다.

김기춘은 행정법상 기속행위와 재량행위의 논리를 기막히게 빌려 무죄 논리를 만들어낸 것이다. 본질은 "명단 작성"과 "사직 강요"다.

김기춘, 통치행위 이론을 빌리다 "범죄가 아니라 이념·권한에 따른 정책 집행"

김기춘은 정교하게 행정법을 활용했다. 다음은 김기춘의 주장이다.

① 비서실장은 대통령을 보좌하는 정무직 공무원이다. 수석 비서관은 대통령의 수석 비서관으로서, 비서실장의 비서관이 아니다. 비서실장의 지시를 받는 관계가 아니다.

② 내 지시는 "진보와 보수의 균형을 유지하라 지시한 것"이었다. 특검은 지원 배제 명단에 속한 특정 정파 소속의 개인·단체의 말만 듣고 기소했을 뿐이다.

①번 주장은 김기춘 특유의 '남 탓' 논리가 잘 살아 있는 주장이다. "나는 대통령을 보좌할 뿐, 수석 비서관에게 공식 지시를 할 수 없다"는 주장이다. 

즉, 대통령과 수석 비서관 간 지시 관계로부터 비롯된 것이기에 자신은 무관하다는 주장을 한 것이다. 박 전 대통령에게 책임을 떠넘긴 것이다.

②번 주장은 대통령의 통치행위를 빌린 것으로 평가할 수 있다. "대통령을 보좌하는 정무직 공무원"으로서, 대통령의 명을 전달한 것이라는 취지의 주장이다. '진보와 보수의 균형 유지'는 정치적 행위이다. 

고도의 정치성을 갖는 국가행위는 사법심사가 제한될 수도 있다. 행정법상 용어로 '통치행위'라고 한다. 즉, "대통령의 명을 받아, 대통령의 통치행위를 보좌했을 뿐"이라는 주장을 한 것이다. 

하지만, 대법원은 이미 다음과 같이 판시한 적이 있다.

"계엄선포의 요건 구비 여부나 선포의 당·부당을 판단할 권한이 사법부에는 없다고 할 것이나, 이 사건과 같이 비상계엄의 선포나 확대가 국헌문란의 목적을 달성하기 위하여 행하여진 경우에는 법원은 그 자체가 범죄행위에 해당하는지의 여부에 관하여 심사할 수 있다고 할 것." - [대법원 1997.4.17, 선고, 96도3376, 전원합의체 판결](링크 클릭)

헌법재판소도 다음과 같이 판시한 적이 있다.

"헌법재판소는 헌법의 수호와 국민의 기본권 보장을 사명으로 하는 국가기관이므로 비록 고도의 정치적 결단에 의하여 행해지는 국가작용이라고 할지라도 그것이 국민의 기본권 침해와 직접 관련되는 경우에는 당연히 헌법재판소의 심판대상이 될 수 있는 것일 뿐만 아니라, 긴급재정경제명령은 법률의 효력을 갖는 것이므로 마땅히 헌법에 기속되어야 할 것이다." - [헌법재판소 1996. 2. 29. 선고 93헌마186 전원재판부 (긴급재정명령 등 위헌소원)](링크 클릭)

대법원은 "통치행위여도 범죄행위 심사가 가능하다"는 입장을 가지고 있고, 헌제는 "기본권 침해와 직접 관련이 있다면 심판이 가능하다"는 입장을 가지고 있다. 김기춘이 대법원과 헌재의 입장을 바꿀 수 있을지 지켜볼 필요가 있다. 

'법마' 김기춘, 과연 살아남을 것인가

조국 서울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는 김기춘을 '법마(法魔)'라고 평가했다. 김기춘은 천주교 신자다. 그런 김기춘을 향해 '마귀'라고 평가한 것이다.

3월 31일 구속영장이 발부돼 서울구치소로 이동 중인 박근혜 전 대통령 ⓒSBS

故 김영한 전 청와대 민정수석의 비망록에는 김기춘이 꿈꾼 대한민국이 적혀 있었다. 이에 따르면, 김기춘은 ▲야간의 주간화 ▲휴일의 평일화 ▲가정의 초토화를 꿈꾼 것으로 보인다. 밤낮과 휴일 없이 일해 가정을 돌볼 틈이 없는 대한민국을 꿈꾼 것이다.

그런 김기춘의 눈으로 볼 때, 문재인·박원순을 지지하며, 세월호 참사 문제로 박근혜 정부를 비판하는 자들은 불순분자였을 것이다. 그런 자들을 향해 정부의 돈으로 지원을 한다는 현실을 쉽게 이해하지 못했을 것이다. 

'법마(法魔)'는 나이 팔순에 이르러, 구치소에 수감된 채 자신의 수갑 찬 모습을 전국민에게 보여주는 신세가 되고 말았다. 과연 '법마(法魔)'는 무죄 선고를 받아낼 수 있을까?

잠시라도 방심하면, '법마(法魔)'의 논리에 녹아 내릴 수 있다. '법마(法魔)'의 공판을 신중히 지켜보고 검증해야 하는 이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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