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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한산성' 言의 전쟁 속 生의 길: 死·開·米·降[리뷰] 아무렇게나 핀 민들레 한 송이, 겨울이 가면 반드시 봄이 온다
박형준 | 승인 2017.10.03 17:40

병자호란의 패배: 인조의 지분이 클 수 밖에 없는 이유

영화 '남한산성' ⓒ싸이런 픽쳐스

1626년, 명나라는 영원성 전투에서 청나라에 승리한 뒤 청나라와의 교역을 차단한다. 이후 청나라에 불어 닥친 것은 식량난이었다.

천혜의 요새 산해관을 끝내 넘지 못했으니, 서쪽으로 진격할 길도 요원했다. 

게다가 만주족은 원래 농경민족이 아니었다. 남은 활로는 오로지 하나 뿐이었다. 남쪽에 있는 조선이었다.

추후 진행할 명나라와의 일전을 앞두고, 후방을 안정시키기 위해서라도 조선은 반드시 기를 꺾어놔야 했다.

조선에서는 명나라와 청나라 사이에서 양면외교를 펼쳤던 광해군이 실각했다.

게다가 인조반정의 공신들 간 내부 권력다툼으로 발생한 이괄의 난은, 평안도 일대의 최정예병력 1만 2천 명이 순식간에 사라지는 치명타를 남겨 놓는다. 또한 스스로 반정으로 왕위에 오른 인조는 이를 지나치게 의식한 나머지 장수들의 군사훈련을 극도로 통제했다.

중앙병력을 강화하기는 했지만, 큰 효과를 보지 못했다. 아울러 광해군이 궁궐 공사에 미쳐 있던 후유증은 인조 대의 재정난으로 이어졌다. 

전쟁은 결코 하나 만의 이유로 발생하지 않는다. 겉으로 내세우는 것은 대의명분이지만, 실질적으로는 정치적·경제적 이유가 자리 잡고 있다.

앞서 이야기했듯이, 청나라는 식량난과 군사적 교착상태를 해소해야 하는 절체절명의 위기에 처해 있었다. 

그랬던 청나라에게 전쟁의 의지를 북돋아준 것은 조선 내부의 권력투쟁에 따른 정예 병력의 상실, 그리고 청나라로 투항한 이괄의 일부 진당들의 존재였다. 

청나라가 압록강을 넘은 뒤, 인조의 부족한 능력을 드러내는 또 하나의 결정적 패착이 드러났다. 그것은 바로 도원수 김자점의 존재였다.

김자점은 인조의 전형적인 측근인사였다. 아무런 능력도 없이 오로지 인조반정 공신이라는 것 하나만으로 정예병력 2만 명을 거느리는 도원수가 됐던 것이었다. 

하지만 김자점은 단 한 번의 전투에서 패배한 뒤, 싸울 생각을 하나도 하지 않았다. 청나라 군대는 보급에 대한 검토 없이 오로지 "인조만 사로잡겠다"는 판단 하에 전격전을 진행했다.

따라서 김자점이 최정예병력으로 적극적 대응을 했다면, 승산이 없지는 않았다. 이 역시 인조가 자처한 일이었다.

영화 '남한산성'의 한 장면 ⓒ싸이런 픽쳐스

또한, 세자를 비롯한 종친들이 도피해 있던 강화도에는 김경징이 있었다. 1등공신으로서, 영의정이자 도체찰사였던 김류의 아들이었다.

이 역시 측근인사였다. 김경징은 술만 퍼마시다가 강화도가 함락되는 황당한 꼴을 본다. 송화강을 넘나들며 해적 노릇도 했던 여진족을, 과거 고려로 쳐들어왔던 몽고군인 양 인식하다가 자초했던 비극이었다.

능력이 있는 측근이라면 요직에 발탁할 수도 있다. 하지만 무능력한 자를 오로지 측근이거나 측근의 아들이라는 이유로 요직에 발탁했던 것이다. 병자호란에서 인조가 차지하는 비난의 이유가 적지 않은 이유였다. 

궁궐 공사에 미쳐 있던 광해군을 대신해, 당대의 재정난을 극복하면서 중국의 왕조교체기에 유리하게 대응하려면 가장 필요한 것은 정책의 섬세함이었다.

하지만 인조는 섬세한 정책과 거리가 있는 자였다. 아무런 비전 없이 동생 능창군의 죽음에 대한 복수와 탐욕 때문에 왕위에 오른 자가 자처한 비극이었다.

인조가 남한산성에 고립돼 있던 것도 큰 문제였다. 임진왜란 당시 선조는 고립 없이 북방의 명나라와 가까운 국경지대에 있었기 때문에 장수들이 안심하고 싸울 수 있었다.

왕조국가의 특성상 왕이 사로잡힐 경우의 타격은 말로 상상할 수 없다. 따라서 근왕군은 오로지 남한산성으로만 향했고, 그나마 그 근왕군들은 훈련도 부족한 상황이었다. 

1637년 1월 발생한 쌍령 전투는 근왕군들의 훈련 부족과 군사적 안목이 없는 지휘부 때문에 맛볼 수 있는 처절한 비극을 상징했다. 4만 명의 근왕군은 수천 명의 청나라 군대에 철저히 무너져 흔적도 없이 사라졌다. 

근왕군 4만 명이 한순간에 사라졌고, 강화도는 함락됐다. 남한산성은 훌륭하게 버티고 있었지만, 성내의 군량은 바닥나고 있었다.

이마저도 식량창고를 성 밖에 지었기 때문에 발생한 일이었다. 청나라 군대가 사방을 포위한 상황에서 무슨 수로 식량을 꺼내올 수 있었겠는가. 

할 수 있는 것은 하나뿐이었다. 항복이었다. 결국 인조는 삼전도에서 청나라 황제 홍타이지에게 3번 절하고, 9번 머리를 땅바닥에 찧는 삼배구고두례(三拜九叩頭禮)를 행했다. 그나마 이 정도로 끝난 것이 다행스러웠던 치욕적 패배였다.

살기 위한 길(生): 死·開·米·降

임진왜란은, 조선의 지배층에게 명나라에 대한 정서적 의존도와 정치적 명분이 더욱 강해지는 이유가 됐다.

이른바, 재조지은(再造之恩)이었다. "쑥대밭이 됐던 나라를 보존하게 해준 은혜"였던 것이다. 광해군을 축출한 이유 중 하나도 바로 재조지은이었다. 

영화 '남한산성'의 한 장면 ⓒ싸이런 픽쳐스

아울러 도적떼 같은 야만족으로 인식했고, 불과 100여 년 전까지만 해도 조선을 '부모의 나라'로 섬겼던 만주족(여진족)을 섬기는 일 따위는 도저히 있을 수 없는 일이었다. 

그것은 정치적 정당성마저도 박살나는 일이었다. 김상헌을 비롯한 대다수의 사대부들이 절체절명의 순간에도 항복을 입에 담기 힘든 이유였다.

아울러 항복을 한다고 곱게 끝난다는 보장이 없었다. 북송과의 전쟁에서 승리한 뒤, 휘종과 흠종 등 2명의 황제를 압송한 금나라는 바로 청나라의 조상이었다. 인조가 청나라로 압송될 가능성도 있었다. 

반면, 비상한 두뇌를 가지고 있고 '실천'을 강조했던 양명학을 독학한 최명길의 관점에서는, 재조지은이든 뭐든, 그런 것은 살아남은 뒤의 일이었다.

이미 현실 자체가 녹록하지 않았다. 임금이 좁은 산성에 고립된 채 힘겹게 버티고 있는 상황에서 할 수 있는 일은 별로 없었다. 

아울러 임진왜란 이후 근본적 개혁을 제대로 시도조차 하지 못한 조선의 각종 문제점은, 이미 병자호란 이전에 모두 불거졌던 상황이었다.

이괄군과 진압군이 한양성 밖에서 전투를 치룰 때, 백성들은 아예 구경을 나와 "누가 이기든 상관없다"는 태도를 보여준 바 있다. 과연 항복 말고 할 수 있는 것이 무엇이었을까.

김훈의 소설 '남한산성'에서, 최명길은 "살기 위해 길(성문)을 열어야 한다"고 주장했고, 김상헌은 "살기 위해 죽어야 한다"고 한다.

정치가들이 벌이는 말(言)의 전쟁이 치열하게 진행됐던 남한산성의 모습을 생생하게 재현했던 소설이었다. 그런 가운데 백성은 오로지 살기 위해 노력했다. 

그들이 가고자 하는 곳은 삶(生)이었다. 하지만 하나의 목적지를 두고 가는 길은 여럿이 거론됐다.

김상헌을 비롯한 대다수의 관료들은 삶을 향해 나아갈 길로 죽음(死)을 거론했고, '역적' 소리를 들어가면서까지 주장을 고수했던 최명길은 "문을 여는 것(開)"을 거론했다. 백성은 예나 지금이나 쌀(米)이 있어야 살아갈 수 있었다. 

이런 가운데 백성의 욕구를 잃지 못한 채, 자신들의 언어만을 고수하는 고위관료들의 존재는 차라리 없으면 나을 존재로 해석되기도 한다.

소설에서는 이런 캐릭터의 대표로 인조반정 1등공신으로서 영의정이었던 김류가 대표적으로 묘사됐고, 영화에서는 송영창이 김류로 분해 소설 이상의 '찌질이'로 묘사된다.

영화 '남한산성'의 한 장면 ⓒ싸이런 픽쳐스

이런 상황에서 매우 독특한 선택을 한 사람은 역관 정명수였다. 정명수는 역관이기 때문에 누구보다 말(言)로써 살아가는 사람이었다.

정명수는 조선인의 정체성을 버리고 일찌감치 청나라 말을 할 줄 아는 재주를 이용해 청나라 사람으로서 용골대의 옆에 붙어 조선의 위에 서고자 한다. 그 역시 말재주와 항복(降)으로써, 삶(生)을 추구했던 것이다. 

'고위관료들의 말(言)'에 갇혀 살 뿐만 아니라, 후세가 모두 알고 있듯이 무능력한 인조는 말의 향연에서 고심을 거듭하지만 현명한 선택을 하지 못했다. 강화도가 함락된 뒤에야 선택을 했다. 홍타이지에 대한 삼배구고두례를 감수함으로써, 인조는 開를 선택했다. 

겨울이 가면 반드시 봄이 온다

최명길과 김상헌은, 인조 당대에서 그나마 능력 있고 양식 있는 지도층으로 통했다. 그렇기 때문에 소설이든 영화든, 그들의 존재와 고뇌는 빛을 발한다. 

김상헌은 성리학적 명분에 심취해 있는 사람이지만, 김윤석이 분한 영화 '남한산성' 내 김상헌은 순간순간 섬뜩한 현실적 감각을 발휘하며, 신분이 낮은 사람의 건의도 합리적이면 기꺼이 수용한다.

그리고 자신이 저지른 나쁜 행동을 양심에 담아둔 채 끝까지 책임지려고 노력한다. 영화는 이렇듯 '성리학적 원칙주의자' 김상헌의 유연함을 보여준다.

반면, 고독하게 항복을 주장하는 최명길은 오히려 원칙적이다. "역적 명길의 목을 베라"는 상소가 사방에서 쏟아지고, 증오와 저주에 노출됐지만, 자신이 정한 원칙에서 결코 물러서지 않았다. 영화 '남한산성'의 최명길(이병헌 분)은 반대파들의 반응에 신경 쓰지 않고 오히려 이해하는 모습을 보이는 등 침착하고 차분한 사람이다. 

하지만 실제의 최명길은 "역적 명길의 목을 베라"는 상소를 쏟아내는 대간들을 향해 거칠게 비난을 쏟아내면서 "모든 것은 다 내가 책임진다"는 태도를 보였다.

오히려 한 번 정한 것을 결코 무르지 않는 강한 성향을 가지고 있었던 것이다. 실제의 최명길이든, 영화 속 최명길이든 '현실적 선택 속 완고함'을 보여주고 있었다.

영화 '남한산성'의 한 장면 ⓒ싸이런 픽쳐스

영화는 소설의 주제의식을 유려하게 전달하고 있었다. 남한산성 내 백성들이 처하는 비참한 상황과 멍청하고 부지런한 상관의 잘못된 결정이 얼마나 많은 사람들을 비극으로 내몰 수 있는지, 그들의 말(言)이 차지하는 힘과 비중을 암시하고 있었다.

겨울이 가면 만물이 살아 꿈틀거리는 봄이 온다. 전쟁이 끝나면, 산 자는 죽은 자에 대한 기억과 슬픔을 가슴에 묻고 다시 살아야 한다.

그리고 사람은 살아 있는 한, 그것이 우연이든 필연이든 인연이 만들어진다. 삶은 그런 것이었다. 길가에 아무렇게나 핀 민들레 한 송이도 그렇게 살았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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