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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재용 판결 분석 ⑨] "제일모직·삼성물산 합병: 직접 청탁 X, 이재용 이익 ○""제일모직·삼성물산 합병, 박근혜 지시 증거 없지만, 이재용 경영권 승계에는 이익"
박형준 | 승인 2017.10.05 13:15

재판부의 묘수: 구성요소로서의 삼성그룹의 경영 현안

문형표 전 보건복지부 장관·홍완선 전 국민연금공단 기금운용본부장은 '제일모직·삼성물산 합병'에 대한 국민연금공단의 찬성 의결권 행사 관련 직권남용 권리행사방해 등 혐의 제1심 공판에서 각각 징역 2년 6월 형을 선고받고 항소심을 진행하고 있다. (이하 등장인물 호칭 생략)

다만 문형표·홍완선의 재판에서는 박근혜 전 대통령이 개입했는지에 대해서는 판단하지 않았다. 따라서 박근혜가 문형표에게, 합리적 이유 없이 찬성 의결권 행사를 지시했는지에 대해서는 적어도 문형표·홍완선의 재판에서는 확실하게 확인되지는 않은 셈이었다.

서울중앙지법 형사합의27부(부장판사 김진동)는 8월 25일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 등에게 뇌물공여 혐의 유죄를 선고하면서, ▲특검이 제시한 삼성그룹의 개별적 경영 현안에 대해서는 '부정한 청탁'의 성립을 인정하지 않았지만 ▲일부 현안에 대해서는 '이재용의 경영권 승계'라는 포괄적 현안 내에 포함된다고 인정했다. 그중 일부가 바로 '제일모직·삼성물산 합병'이었다.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 ⓒKBS

계속 강조하지만, 삼성그룹의 개별적 경영 현안에 대한 부정한 청탁 가능성은 제1심 재판 내내 회의적으로 접근할 수 있는 소재였다.

부정한 청탁이 성립하려면, 박근혜가 청와대 참모들이나 각 부처의 정책결정권자들에게 간접적으로라도 관련 지시를 내렸음이 확인돼야 했다. 하지만 특검이 이를 입증하지 못했다. 

특검은 자신들이 설계한 공소사실을 숙지하지 못했는지, 제1심 공판 중 부정한 청탁에 대해서는 특검 스스로도 말만 많을 뿐, 시간만 잡아먹은 채 정리가 안 된 장광설로 일관했다.

자신들도 이를 잘 알았는지, 일부 참고인들에 대해서는 협박을 일삼았다는 추론이 가능한 정황이 증인신문 중 밝혀지는 예도 간혹 있었다. 

재판부는 이런 혼돈 속에서 '이재용의 경영권 승계'라는 포괄적 현안을 토대로, 삼성그룹 내 일부 경영 현안을 '구성요소'로서 판단하는 묘수를 둔 것이었다. 

다만 삼성 측 입장에서는 항소심에서 적극적으로 반박할 여지가 있는 결론이기는 했다. 따라서 양측은 항소심에서 다시 치열한 법정 공방을 진행할 것으로 예상된다.

[논점 ①] '소액주주 권익'과 이재용 경영권 승계의 상관관계

국민연금공단 투자위가 '제일모직·삼성물산 합병'에 찬성 의결권을 행사하기로 결정한 날은 2015년 7월 10일이었고, 삼성물산 주주총회는 7월 17일 진행돼 합병 찬성 안건이 통과됐다. 박근혜와 이재용이 단독면담을 한 날은 7월 25일이었다.

재판부는 이를 토대로 "7월 25일은 이미 국민연금공단이 주주총회에서 찬성 의결권을 행사한 뒤"라고 판단했다. 그러면서 "이재용이 7월 25일 단독면담에서 '제일모직·삼성물산 합병' 관련 청탁을 했다고 보기는 어렵다"고 판단했다. 구체적으로 짚은 정황은 다음과 같다.

▲ 단독면담을 대비해 작성된 대통령의 말씀자료에 '정부 임기 내 승계문제 해결 희망' 등의 내용이 적힌 것은 사실이다.

▲ 하지만 안종범 전 청와대 정책조정수석·정호성 전 청와대 부속비서관은 "말씀참고자료라서 대통령이 정말로 말씀자료 내용대로 발언할지는 알 수 없고, 대통령은 그때그때 상황에 맞게 참고한다"고 증언했다.

▲ 해당 말씀자료를 작성한 청와대 행정관은, 삼성그룹으로부터 자료를 받아 작성한 것이 아니라 인터넷 검색 자료 등을 토대로 작성했다. 

안종범 전 청와대 정책조정수석 ⓒKBS

▲ 안종범의 2015년 7월 27일자 수첩에 '헤지펀드 엘리엇'에 대한 내용이 적힌 것은 사실이다. 하지만 단독면담으로부터 2일 뒤에 별도로 기재된 것이고, 안종범 스스로도 "박근혜에게 2015년 7월 20일 서면보고한 내용에 대한 피드백일 가능성이 높다"고 증언했다.

▲ 안종범 수첩에 적힌 해당 내용의 문구 'M&A 활성화 전개' '소액주주 권익' 'Global standard ↑'는 이재용의 경영권 방어 강화 방안으로 청탁할 만한 내용이 아니다.

(※ 기자 주: '소액주주 권익'이 과연 이재용의 경영권 승계 및 방어 강화와 어울리는 내용일까? 엘리엇에 혼쭐난 삼성그룹과 이재용에게 'Global standard ↑'가 반가운 내용일까?)

▲ 해당 서면보고를 기안한 최훈 당시 청와대 경제금융비서관실 행정관은 "'엘리엇 사태는 재벌 스스로도 자초한 측면이 있으니, 주주 친화적 경영을 해야 한다'는 취지로 서면보고를 작성했다"고 증언했다.

[논점 ②] "홍완선의 행적, 박근혜의 지시라고 할 증거 없다"

2015년 7월 7일은 이재용이 홍완선을 직접 면담한 날이었다. 특검은 이날의 면담을 '부정한 청탁'의 주요 근거로 제시했다.

하지만 특검은 여기서도 구멍이 뚫린 주장을 장광설로 풀어나갔다. 꼭 해야 할 것을 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홍완선이 청와대의 지시를 받고 '제일모직·삼성물산 합병' 찬성에 적극적으로 나섰다"는 것을 입증해야 했지만, 하지 않았던 것이다.

"입증을 해야 한다"는 생각 자체를 안 한 것 같지는 않다. 특검의 한 파견검사가 채문규 전 국민연금공단 리서치팀장을 조사하던 중 "이러다 옷 갈아입고 조사 받는다. 구치소는 춥다"는 말을 한 것이 공개적으로 확인됐기 때문이다. 정확히 말해 입증을 하려고 했다기보다, "입증을 만들려고 했던 것"으로 추정된다. 

이것은 검사들이 문학작품을 집필할 때 동원하는 흔한 방법 중 하나일 뿐이다. "문학작품도 현실의 반영이기 때문에, 정교한 서사 구조가 필요하다"는 문학비평의 지배적 사조를 외면한 뻔한 방법이라 실망스러울 뿐, 특별한 일은 아니다.

특검이 이런 식으로 참고인을 상대로 유도신문을 시도하거나 협박을 한 정황은 최소한 10건은 재판 중 확인됐다. 

이날의 면담을 전후로 한 사정을 두고, 재판부는 다음과 같이 판단했다.

▲ 이재용이 국민연금공단의 관계자의 질문에 답을 하면서 "합병 성사를 도와 달라"는 부탁을 하는 것이 이례적이거나 비정상적인 것이라고 보기 어렵다. 아울러 이 면담이 "박근혜에게 보고됐다"고 볼만 한 증거도 아무것도 없다.

▲ 2015년 7월 4일, 장충기 삼성그룹 미래전략실 차장(사장)은 이수형 기획팀장(부사장)으로부터 "김성민 전문위원장이 합병에 반대한다"는 취지의 문자 메시지를 받고, "홍(완선)이 책임지면 된다"는 답장을 보낸 것은 사실이다.

▲ 위 문자 메시지로 보건대, 홍완선이 장충기로부터 합병 관련 청탁을 받았다고 할 여지는 있지만, 그것이 곧 박근혜에 대한 청탁이라고 볼 수는 없고, 박근혜에게 보고됐다고 볼 증거도 없다.

▲ 장충기가 국민연금공단의 동향을 파악하려고 한 것은 인정된다. 하지만 정부와 청와대에 청탁을 했음을 뒷받침하는 사실은 아니다.

장충기 전 삼성그룹 미래전략실 차장 ⓒKBS

▲ 안종범·문형표·최원영 전 청와대 고용복지수석 등은 일관적으로 "삼성그룹으로부터 부탁을 받거나 논의를 한 적이 없다"고 진술한다. 이를 뒤집을 만한 증거도 없다.

▲ 박상진 당시 삼성전자 대외협력담당 사장이 2015년 7월 10일 안종범도 참석한 한 포럼에서 "경영권 방어 수단을 도입해 달라"는 취지의 발언을 한 것은 사실이다.

▲ 하지만 이것은 전경련 회원사들이 공유하던 현안을 밝힌 것으로 볼 여지가 있다. 안종범은 "포럼의 논의 내용을 박근혜에게 보고한 적은 없다"고 증언했다.

▲ 장충기가 유리한 여론 조성을 위해 학계·언론계·전문가 집단 등과 소통을 한 사실은 인정되지만, 박근혜가 이를 전달받았다고 볼 증거는 없다.

▲ 아울러 박근혜가 "기업의 경영권 방어 강화가 필요하다"는 여론을 들었다고 해도, 그게 이재용이나 미래전략실의 행위에 따른 결과로 귀속시킬 수는 없다. 

[논점 ③] "합병 후 이재용이 얻은 이익: 삼성물산·삼성전자 지배력 강화"

하지만 '제일모직·삼성물산 합병'은 '이재용의 경영권 승계'라는 포괄적 현안의 일부로 예속됐다. 삼성 측은 '구 삼성물산의 부실' '합병에 따른 시너지 효과'를 근거로 이를 부인했지만, 재판부는 인정하지 않았다. 

재판부는 "합병 후 이재용은 신 삼성물산의 최대주주가 됐고, 이재용이 최대주주였던 제일모직이 비금융계열사들의 지주회사가 되기 위해서는 삼성물산이나 삼성전자와 합병을 거쳐야 했다"고 판단했다. 

▲ 이재용은 구 삼성물산 보유지분이 없었지만, 합병 후 16.5%를 가진 개인 최대주주가 됐다. 현금 출연 없이 사실상 지주회사 역할을 하는 주력계열사 삼성물산에 대한 이재용의 지배력이 강화됐다.

▲ 구 삼성물산은 삼성전자의 지분 4.06%를 보유하고 있었다. 이재용이 삼성전자를 지배할 수 있는 루트가 짧아졌고, 이는 "삼성전자에 대한 이재용의 지배력 강화에 중요한 의미를 가진다"고 평가된다. 

▲ 이건희 삼성전자 회장이 사망할 경우, 지분 상속 과정에서 제일모직은 삼성생명의 최대주주가 돼 금융지주회사로 강제 전환될 위험이 있었다. 

▲ 하지만 합병 후 신 삼성물산의 자산총액 규모가 커짐에 따라, 제일모직의 금융지주회사 강제 전환 가능성은 사실상 종국적으로 해소됐다. 

▲ 이재용은 제일모직의 최대주주였다. 따라서 제일모직은 삼성그룹의 비금융 계열사 전반을 지배할 수 있는 지주회사가 돼야 했고, 이를 위해서는 삼성물산이나 삼성전자와 합병을 거쳐야 했다. 

▲ "합병에 따른 시너지 효과를 전혀 기대하기 어렵다"고 볼 수는 없다. 하지만 이재용의 지배력 강화에 상당히 긍정적인 효과가 발생했고, 삼성그룹은 이미 이전부터 에버랜드 전환사채 인수·제일모직의 액면분할 및 상장 등을 거쳤으며, 미래전략실이 적극 관여했다.

▲ 이것은 이재용의 승인이나 동의 없이는 추진이 사실상 불가능하고, 실제로도 이재용의 승인과 동의 하에 추진됐다. '엘리엇' 등 해외자본의 공격에 대한 방어는 이재용이 해소해야 하는 부수적 현안에 해당한다.

홍완선 전 국민연금공단 기금운용본부장 ⓒKBS

이재용은 제일모직의 최대주주였지만, 삼성물산 지분은 거의 없었다. 하지만 삼성물산은 삼성전자 지분 4.06%를 보유하고 있었다.

"제일모직과 삼성물산이 합병하면, 이재용이 삼성전자 지분 4.06%에 접근할 수 있는 루트는 짧아진다"는 주장은 사실상 '사실'이었고, 누구나 쉽게 유추할 수 있는 것이었다. 

재판부는 이 순리를 직시했던 것으로 보였다. 따라서 '제일모직·삼성물산 합병'은 직접 '부정한 청탁'이 되지는 않았지만, '이재용 경영권 승계 관련 시그널 지지'의 구성요소로서 인정됐다. 항소심에서, 삼성 측은 재차 "양사 합병 후 시너지 효과"를 강력하게 주장할 것으로 예상된다.

(다음에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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